죽은 별과 살아있는 목소리

빛은 빛, 사랑은 그냥 사랑

by 슴도치


이대로는 미칠 것 같아요. 남자는 벌레를 손으로 눌러 죽였다. 여름밤에는 불을 켜두면 안 됐다. 등에 까맣게 붙은 벌레를 보며 남자는 스위치를 내렸다. 벌레도 어둠과 함께 죽어버렸으면. 어둠 속에서 별빛이 밝았다. 벌레들이 이제는 저 별들로 옮겨간다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별은 벌레보다 많았다. 저 별빛 중에 이미 죽은 별도 있을 거였다. 남자는 죽은 뒤에도 빛으로 남은 별들이 안쓰러웠다. 이대로는 미칠 것 같아요. 여자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부드러운 목선과 말간 이마와 유성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물도. 그에게 여자는 늘 숙제 같았다. 도움 없이는 한 문제도 풀 수 없는.


그녀는 어두워져야 보이는 별빛이었다. 다시 방문을 열어보았다. 문틀이 아귀가 맞지 않아서 뻑뻑했다. 미리 고쳐둘 걸 하고 남자는 후회했다. 그녀는 여전히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줄이 그녀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마지막 탯줄 같았다. 멀지 않은 곳이 소란스러웠고, 남자는 속이 뒤숭숭 해졌다. 사람들이 저리 가라고 소리치는 걸 보니 산에서 짐승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짐승이 보기에 민가의 불빛도 별빛처럼 보일까. 이대로는 미칠 것 같아요. 여자의 목소리가 죽은 별처럼 남자 옆으로 뚝뚝 떨어졌다.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소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횃불을 피웠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일렁이는 불빛 속으로 남자도 무작정 뛰어가고 있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0일 오후 06_18_35.png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 선명하게 존재하는 것보다 그 유령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더 오래 붙들었다. 지켜지지 못한 약속이 그렇고, 우리가 나누던 대화가 그렇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얼굴들이 그렇다. 완벽하게 과거가 된 빛, 하긴, 우리가 보는 빛이란 현재가 아니면 과거의 것이다. 미래의 빛을 미리 볼 수 없다는 사실. 그 빛을 보는 순간 현재가 되고 그 시점에 다시 과거가 된다. 미래에는 아무런 힘도 없다.



예상과 기대는 확신과 결과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와 과거에만 존재할 수 있다. 미래에 만날지 모를 사람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비교할 수는 없다. 살아갈수록 사람과 빛은 동일해져만 간다.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과 나를 어둠에서 꺼내주는 것. 모두 같다.



그중에서도 나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 어떤 기억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보다 더 곁에 있다.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부르던 회한이라고 부르던 중요하지 않다. 더 반짝이는 별이 죽은 별일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도 그런 것 같다. 더 아프게 지나간 사랑이 더 반짝여 보일 때가 있다. 그때는 죽을 것처럼 아팠는데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이 더 아름답게 기억될 때가 있다.



사소한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수천억 광년 떨어진 별빛처럼. 손의 형태, 콧잔등,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마저 기억에 분명히 남아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숙제다. 다 푼 것 같은데 뒷장이 남았고, 어떤 문제는 혼자서 도저히 풀 수가 없다. 더 답답한 건 답안지도, 선생님도 없다는 사실. 단답형이 아니라 논술형 문제에 가깝다. 아니, 어쩌면 난센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 많은 관계와 책임 속에 묶여있는 일이다. 시 속의 남자는 결국 불빛 속으로 짐승처럼 뛰어든다. 그 빛이 자유의 빛인지 파괴의 빛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뛰어든다. 그 행위로 아직 살아있음을 말한다. 뛰어든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가 더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거기에 살아갈 자리는 없다.



그는 쇠사슬처럼 묶여 있던 자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뛰는 것을 택했다. 그래, 미래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그 미래. 과거의 불빛에 메어있는 게 아니라 저 앞에 무엇일지 모르는 불빛으로 뛰어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내 선택에 의해 현재와 과거의 또 다른 의미의 빛이 된다는 것. 그것만큼 살아가는 데 있어 강한 힘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희망처럼 말이다. 희망은 분명 미래의 것이니까.



별을 보려면 일단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한다. 세상은 쓸데없는 것들로 너무 밝고 눈부시다. 나는 어두운 시골 마을의 평상이나, 야트막한 산기슭에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다. 그중에는 죽은 별도 있지만, 이제 막 태어난 별도 있을 것이다. 결국, 빛은 빛이다. 사랑이 그냥 사랑인 것처럼.



당신이 오늘도 내게 찬란하게 쏟아진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0일 오후 06_17_43.png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13화그가 꿩처럼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