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꿩처럼 울었다

잘못된 덮음과 덮어진 잘못

by 슴도치

남자는 서랍에서 리볼버를 꺼내 손질을 했다. 이 시간 동안만은 방해받는 것이 싫었다. 매일 하는 일이었지만 상당히 성가셨다. 실수로 기름 몇 방울을 바지에 흘렸지만 남자의 기분은 괜찮았다. 내일은 토요일이고 아침부터 꿩 사냥을 나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자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더니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 몇 번씩이나 나를 피하는 거야! 내 돈! 직원들이 달려와서 여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관리자가 들어와 아무 일도 아니라는 투로, 어제부터 찾아온 손님인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미친 여자더라고요. 상당히 성가셨지만 이제는 해결 됐습니다! 쉰이 훌쩍 넘은 관리자는 연신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남자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진즉 말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리자는 사실 어제 온 것은


아니고 지난달에 왔던 여자고 단순 민원이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능글거렸다. 남자는 그러니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요?라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남자는 관리자의 매끈한 머리가 새알처럼 보였다. 몇 해 전 사냥이 끝난 뒤 알을 낳은 둥지 위에 죽은 새를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덮어두면 없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관리자는 입맛을 다시더니 참 성가신 여자였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할 뿐이었다. 사무실을 나가는 관리자의 뒷모습이 뒤뚱거리는 꿩처럼 보였다. 그는 내게 무엇을 덮어두었을까. 남자는 무심코 자신의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바지에는 아직도 기름 자국이 선명했다. 비서를 불러 관리자에게 내일 사냥터로 오라고 전한 그는 장전된 리볼버를 품에 갈무리해 넣었다. 사냥터에서 오발 사고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총은 다시 닦으면 되지만 역시, 영 성가신 일이었다.







이 시는 죽음에 관한 시가 아니다. 잘못과 덮음의 관한 시다



우리는 종종 잘못을 저지른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잘못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문제는 잘못 자체보다, 그 잘못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변호한다.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아니 사실 잘못한 적도 없었다고. 죽은 새를 살아있는 새처럼 둥지에 다시 올려놓듯 가장하며 덮어둔다. 그러나 바지에 묻은 기름얼룩처럼, 남아 있는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많이 흘릴수록 오히려 흔적은 더 진하게 번져간다.



잘못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잘못한 적 없다고 기만하거나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그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 또한 그 진실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다. 대답을 피하고, 말을 돌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그 사람들. 침묵과 회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조차 속이려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결국 남겨진 것은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지우려 한 흔적이다. 그 찝찝한 자국.


이 시를 쓴 이유는 바로 그 지점 때문이다. 잘못을 회피하고 그 잘못이 또 다른 잘못으로 바뀌는 지점. 죄가 죄를 낳는 그 첨예한 지점. 진실이 거짓으로 바뀌고, 거짓이 진실로 탈바꿈되고, 덮으면 없던 일이 되고, 있던 일은 덮어진다. 그 모든 인과관계를 찾아보는 일은 성가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던 일처럼 바뀌지도 않는다. 꿈을 꾼 거라고 자신을 속이려고 해 봐도, 밤에 깊은 잠을 잘 수는 없다.



남자가 관리인을 향해 총을 겨누며 꿩처럼 울부짖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억눌려온 책임의 귀환이다. 그러나 그가 총을 드는 순간, ‘잘못을 덮은 자’에게 ‘잘못된 대가’를 요구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과 사건을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내가 이 시를 쓴 것은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태도를 비추고 싶어서다. 잘못을 지우려는 본능,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흔적, 그리고 결국 돌아오는 대가. 이 긴 연쇄는 인간이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아닐까.



사실 지금의 사회는 너무 쉽게 거짓과 죽음에 대해 말한다. 마녀사냥하고 악인으로 규정짓고 실컷 괴롭히다가 성가시니까 없애버린다. 이런 일이 내 시에서만 나타나는 일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이 상상이고 동화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르고 덮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그것을 또 과장해서 잔인하게 단죄하고 심판하는 일은 지금 이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리볼버는 무엇인가를 쏘려고 만들어졌고, 거짓말은 잘못을 덮기 위해 만들어졌다. 무엇이 다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증오보다 연민이, 혐오보다 동정이 먼저 느껴진다면 내가 잘못인 걸까. 꿩처럼 우는 사람도, 우는 꿩을 쏘려는 사람도 나는 연민한다. 하지만 진짜 잘못은 그때부터다. 모든 살인과 폭력과 사냥이 끝나는 그 시점.



막 알에서 태어난 것들이 죽은 꿩만 쳐다보는 그때.


그때도 우리는 아무도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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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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