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과 있음 사이에 떨어진 것들
손톱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당신이 깎다가 떨어뜨린 모양이다. 티-ㄱ 하얀 손톱이 초승달 같았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 없었다. 없는 당신을 찾다가 나는 또 거실에서 손톱을 하나 주웠다. 초승달인지 당신인지 모를 조각들이 집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럼 나는, 이 집이 당신 위에 지어진 건지 초승달 위에 지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집이 기우뚱 기울었다. 기울어진 김에 나는 당신 손톱을 햇빛에 비춰보았다. 거기에는 토끼도 당신도 살지 않았다. 티 –ㄱ 하고 소리가 나고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때 당신은 손톱을 깎고 있었다. 당신 손톱이 내 앞까지 튀었고. 너무 빨라서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 나를 보고 당신이 환하게 웃었다. 고작 손톱 때문에 웃었던 적도 있었다. 떨어진 손톱을 줍다가 나도 웃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 없었다. 없는 당신을 찾다가 나는 밖으로 나가보기로 하였다. 기우뚱 기울어진 집의 기울어진 문을 열자, 손톱처럼 하얀 달이 파란 하늘에 떠 있었다. 그것도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티-ㄱ 하고 갑자기 생긴지도 몰랐다.
티-ㄱ, 사소한 조각이 세계를 기울일 때
손톱은 사소하다. 아니 사소한가?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아프다면 아픈 것이다. 과거, 고문을 할 때 왜 손톱부터 뽑는다고 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역시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다. 학창 시절 용모 검사할 때는 늘 손톱 검사도 했었다. 손톱이 길거나 손톱 밑에 때가 있으면 손바닥을 맞았다. 하지만 역시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다. 우리는 손톱을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고 잊어버린다. 옛날 만화영화(은비까비)에서는 주인공의 손톱을 쥐가 먹고 주인공으로 둔갑해 사람 행세를 하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것을 본 다음에는 손톱을 휴지에 싸서 버린다. 하지만 역시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다. 아니 사소한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깎아 놓은 손톱을 휴지에 모아보면 그 면면이 문득 초승달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작고 하얀 손톱 조각이 초승달처럼 기울어져 있을 때, 그 순간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부재한 사람의 흔적처럼도 보인다. 만약 그 사람이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손톱의 발견은 그야말로 기막히다.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생활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 흔적이 나를 쥐고 흔든다. 나는 이 시를 쓰면서 사소한 조각이 어떻게 세계 전체를 흔들 수 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없는 사람을 찾다가 손톱 하나를 줍는 일. 그것은 너무 우스워 보이지만, 사실 그 순간이 가장 현실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이런 하찮은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집은 기울어진다. 집이 당신 위에 지어진 건지, 초승달 위에 지어진 건지 알 수가 없다. 부재가 단순히 감정의 허기가 아니라 존재의 기초를 흔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집 밖으로 나간다. 기울어진 문을 열자, 달이 손톱처럼 툭 튀어나온다. 여기서 달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다. 사라진 당신을 대신해 나타나는 거대한 손톱 조각이며, 사라진 목소리를 대신하는 세상의 흔적이다. 나의 세상은 기울어지다가 결국 몰락한다. 사소한 것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린다. 그런 것이다. 마음의 나사는 한쪽만 풀려도 작동을 하지 못한다. 엄청 예민한 거라고 이게.
우리는 사라진 사람을 찾을 수도,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작은 흔적, 혹은 흔적으로 보이는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버틸 때도 있다. 결국 부재를 견디는 나름의 방식은 흔적을 붙잡는 일이다. 손톱 하나,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 버려진 영수증 한 장이 때로는 달보다도 큰 상징이 된다. 궁상맞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당신은 없는데, 또 동시에 있다. 손톱을 깎고 있고 요리를 하고 있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없다.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고, 다시 사라진다. 기억과 실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다. ‘티-ㄱ’ 하는 소리처럼 불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 그 불연속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타인의 부재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궁상맞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작은 손톱 하나. 그 하찮고 사소한 손톱 하나가 나의 세계를 당신에게로 기울인다. 사소한가? 나는 이제 잘 모르겠다. 나는 손톱 고문도 받아본 적 없고, 이제 만화도, 용모 검사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사소한 손톱 하나로 세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문을 열고 나가고 달처럼 하얀 당신이 파란 하늘에 떠 있을 때의 까마득함도 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나는 당신의 손톱을 모아 휴지통에 버린다. 사소한가? 그럴 수도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게 아닐까. 하는 기특한 생각을 해볼 줄도 안다. 그런 생각에 이르러서야, 나도 당신의 부재를 넘어서 한 번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시도를, 그 사소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는가. 그런 사소한 시도와 시도가 모여
기울어진 세계가 다시 똑바로 세워질지.
티-ㄱ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