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말하듯, 닿지 않는 대화에 관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다음 날 일정으로 거래처 남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고 뚱뚱한 남자였다. 내가 몇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그는 손가락에 붙은 껌처럼 그럼, 내일 봐요. 하고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곧이어 당신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은 대뜸 지금 비가 온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방금 전 거래처 남자의 끈질김에 대해 엄살을 떨었다.
당신은 내 말에 대꾸도 않고 집으로 얼른 가라고 했다. 내가 잠자코 있자, 재차 잠꼬대인지 노래인지 모를 말투로 비 맞지 말고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웅덩이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말에는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당신 말대로 비가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맑았고 내일은 껌처럼 끈적한 손을 가진 남자와 악수를 해야 했다. 내일 봐요.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당신과 통화하는 건지 거래처 남자와 통화하는 건지 몰랐다. 당신이 웃으면서 내일 봐요. 하고 끊고 거래처 남자가 비가 오니까 얼른 들어가라고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비가 오니까 들어가라고 말하고, 거래처 남자에게 내일 봐요. 하고 웃으며 끊었는지도 몰랐다. 당신들과 나의 세상이 이미 물로 가득해서 말들이 온 사방에서 울리는지도 몰랐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때 마른천둥과 벼락이 번갈아 쳤다. 내가 종종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이라고 전화에 대고 말했지만. 이제는 거래처 남자도 당신도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을 닫으면 밖이 고요해서 나는 정말 비가 오는 건지 아닌 건지, 다시 한번 겁이 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저기는 비가 내리고 여기는 맑을 때가 있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말을 하는데 다른 대답을 하는 것처럼. 어쩌면 대화도 기상 상황과 같지 않을까? 우기雨期와 건기乾期처럼. 마치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것처럼. 아니 아예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인간은 각각의 섬이란 말처럼. 우리는 완벽하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메아리도 치지 않는 곳에서 실컷 소리쳐봐야 파도 소리만 더 또렷하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상륙한 다윈이 본 것은 대륙의 생물들과는 전혀 다른 종들이었다. 이 섬들은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져 있어서 대륙과 격리된 생태계를 갖고 있었고, 같은 섬이라도 조금씩 다른 환경에 따라 생물 종이 다르게 적응해 살고 있었다. 핀치새와 거북이와 이구아나를 보며 다윈은 고립된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생명들에게 낯선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섬도 각각의 독자적인 섬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그 섬에 상륙한 사람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실례지만 여기, 면세점은 없죠?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 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말보다 내가 더 커지면 그 말의 소리는 작아져서 도달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때때로 거인처럼 커진다. 내가 너무 대단해서가 아니라 듣기가 겁이 나서. 그것은 애처롭지만, 동정받을만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말이 다르다. 답을 알면서 물어보는 사람은 답이 아니라 동의를 구하는 거고 그 발단은 역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답을 유지하고 지속할 용기 말이다.
세찬 비가 내리는데 대화를 하고 있으면 분명 지상에 땅을 딛고 섰는데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울리고 불분명하게 들린다. 누군가에게 내 불편한 진심을 말한다는 건 그런 일이다. 물속에서 말을 하는 것.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다해 말하고 있고 상대방이 들어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영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누굴 탓할 수 있을까. 기껏 찾아봐야 나와 그 사이에 있는 이 물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째서 끊임없이 내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걸까. 쉽지도 않고 어느 때는 증오스럽기조차 하다. 하지만 외계와의 교신을 계속하는 것처럼,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전파를 쏘아댄다. 외딴섬이 되고 싶지 않아서. 교량을 놓고 배를 만든다. 우리는 각각의 섬이지만 그렇다고 연결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렵고 더디겠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면 그곳에 닿아있다. 인사하고, 알아가고, 수틀리고, 이해하고, 타협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결국 그렇게 닿아있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언어란 다른 인간에게 닿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 일은 때로 해저터널을 만드는 것만큼 힘든 작업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한 계속할 수밖에 없는 고된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결국 다른 이들과 연결되기 위해서다. 불신이 쌓이고 외롭고 처량해도 그만둘 수는 없는 건, 우리가 다른 이들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거기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볼 때야말로 우리는 인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들을 처음 봤을 때의 다윈과
타인의 마음에 가닿은 우리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나의 섬이, 우리의 섬이 될 때
그 섬은 비로소 의미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