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이상해서 충분한 날

by 슴도치


아침에는 조깅을 했다. 소나기가 내리고 비를 흠뻑 맞고 말았다.

집에서는 별 것 아닌 일로 식탁에서 빽- 소리를 들었다.

회사에서는 나를 흘겨보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발을 모으고 앉았다.

그 모은 발로 나는 또 뛰었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침 식탁에는 소시지가 있었고

나는 소시지를 충분히 좋아하는 듯했다.


해가 떴지만 먹구름 속에서 소나기 속에서 나는 또 뛰어다녔다.

나를 흘겨보던 사람은 오해였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것은 빽-하는 사과였다.


나는 홀딱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좀 이상한 날이었다. 이상한 날들이 모여 이상한 세상이 되고 이상한 구름이 되고 이상한 식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일어났다고 해도 방해받지 않았을 것이다.


밤에는 어제 사다 놓은 배를 깎아 먹었다.

참 달고 시원했다.


충분한 밤이라고 당신이 대뜸 말했다.

밖에서 소시지 같은 소나기가 빽- 하고 내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사소한 일들의 충분한 연속


재수 없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우산 없이 집을 나섰는데 비가 오고 잡으려는 택시는 오지 않고 버스를 타면 반대 방향이고 핸드폰은 자꾸 울리고 지각이다! 지각! 몽땅 젖은 채로 회사로 뛰어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평소에 보기도 힘든 사장님 얼굴이다. 자네, 잠깐 나 좀 보지.


굳이 머피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꼬이는 날이 있다. 각각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사건이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모이면 무시하기 힘든 결과가 되기도 한다. 마치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드는 것처럼. 사실, 인간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계기는 하나의 큰 사건이라기보다, 몇 개의 작은 사건들이 겹쳐져서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일이 연속적인 날이 있다면 반대인 날도 있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세상은 한쪽으로만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밤과 낮이 있고 여름과 겨울이 있고 남자와 여자가 있다. 대충 보면 엉망인 것처럼 보여도 행복과 불행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 塞翁之馬, 무턱대고 슬퍼하기도 마냥 기뻐하기도 사실, 애매하다.


집 나간 말이 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매일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태도다. 운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다. 그러나 태도는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비를 맞고 욕을 뻑- 듣고 누군가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한다 해도 그것을 나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있다면, 소시지 하나에도 웃을 수 있다.


나쁜 일을 맞닥뜨린다고 해서 그 나쁜 일에 내 감정마저 나쁘게 물들여서는 안 된다. 비를 맞는다고 내가 비가 되지 않는 것처럼. 나쁜 일은 나쁜 일 그 자체로 놔버리는 게 현명하다. 내 행복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내 어깨를 치고 간 기분 나쁜 사람을 노려볼 시간도 없다. 시원한 배 한 조각이면 충분한 날들이 세상에는 충분히 많으니까.


저기서 날 향해 세상 모든 행복을 안고 달려오는

내 사람과 부둥켜 웃을 시간도 부족한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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