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밭에서, 세 번의 나

일상의 반복과 자기 분열

by 슴도치

새벽부터 밭에 갔다. 며칠 가지 않았더니 깻잎이 가슴께까지 자라 있었다. 너무 울창해서 못 알아볼 뻔한 사람 같았다.

방금 전까지 비가 오고 개었다. 예보에서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서 나는 자꾸만 날짜를 잘못 알았다.

밭 저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바구니에 깻잎을 따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묻자, 그도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내 옷과 내 장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왜 그것을 입었느냐고 물었다. 그도 내게 왜 그것을 입었느냐고 대꾸했다.

나는 그의 바구니를 잡아챘고 그도 내 바구니를 잡아챘다. 깻잎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것들도 전부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가 옥신각신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그도 내 옷과 내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누구냐고 물었

당신은 누구냐고
나는 괜히 더 큰소리로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질문들


최근에는 깻잎 밭에 자주 갔다. 지인이 깻잎을 너무 많이 심어서 내게 가져갈 만큼 따서 가져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깻잎은 높게 자랐고 수확량은 제법 많았다. 어느 깻잎 앞에서 나는 함께 갔던 이를 놓쳤고 순간, 나도 내가 어디서 있는지 헷갈리게 되었다.

일상의 반복은 때로는 폭력적이다. 사람을 감옥에 가둬놓는 것만큼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타인으로 느껴지고 내일의 내가 당연히 오늘의 나일 것 같은 감각

발전이 없는 나날은 나를 나로 소모시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은 없다. 그것은 어린 시절 집으로 가는 길을 잃은 것만큼이나 막막하고 답답하다. 자신만의 평화를 찾고 거기서 정체성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금 하는 일이 곧 내가 된다. 단지 직업만 뜻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것. 일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가 되고 그것은 함축적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기에 꽤 효과적이다.

깻잎을 딸 때 나는 깻잎만 생각한다. 깻잎의 냄새를 맡고 그것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며 잠깐 목가적인 시간에 만족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연속적인 만족을 주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는 없다. 나는 나의 본질을 알고 있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고 느낄 때는 뭔가를 쓰고 있을 때뿐이다. 어떤 장면에서 장면으로, 단어에서 문장으로, 듣고 본 것을 하고 싶은 이야기로 표현할 때뿐이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건 내가 의미 없이 분열한다는 의미다. 기계처럼 나를 복제하고 오늘이 어제였고 내일이 오늘인지 모를 삶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장화를 신고 바구니를 들고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농작물을 수확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수확의 기쁨만으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수확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글쓰기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원하고 세상의 평화는 그런 식으로 지켜질 때가 있다.

나는 미래의 예보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저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인생의 재미란 그 장담할 수 없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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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