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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용 Apr 24. 2024

1. 정상 분만

(소설)마음으로 쓰는 편지 - 아빠.  안전벨트 매

1. 정상 분만


" 방금 출산했어요. 예. 딸입니다."


"그래. 잘했다. 엄마는 아침 10시 차로 서울 올라 가셨다. 짐이 많으니 시간맞춰 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 나가봐라. "


외줄타기 광대마냥 불안하기만 했던 철부지 아들이 손녀를 낳았다며 허허 너털웃음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실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졌습니다.


잠시 전 오후 2시

분만실 앞 대기실 소파에 기대 앉은 지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씨 보호자분! 


간호사가 아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복도 전체를 울리는 간호사의 우렁찬(?)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분만실 앞으로 다가서니 


순산입니다. 산모도 아기도 모두 다 건강하니 안심 하라는 축하인사를 건네는데 얼떨떨한 기분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신생아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간호사 품에 안긴 간난아기의 발목에 붙여진 이름표를 보니 그제서야 아빠가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건에 실감이 났습니다.

손바닥만한 얼굴에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아기와 아빠의 역사적인 첫 상봉의 순간이었죠.


아기와의 짧은 상봉을 끝내고 무탈하게 순산하기만 을 기다리실 장모님과 아버지께 소식을 알려드리려 병원밖 도로변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 빠르게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동전구멍에 연신 동전을 넣으며 장모님, 아버지, 처가 식구들과 형제들 순으로 돌아가며 아기아빠가 되었슴을 광고하고  나서 아내가 궁금해 산모방 으로 걸음을 옮겨 방문을 여는데 뜨거운 훈기가 와닿는 느낌이 마치 한증막에 들어선 것과 비슷했 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고 나서 찬기운이 몸에 들면 좋지 않다고 뜨끈뜨끈하게 군불을 때 땀을 내게끔 했었다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아내의 얼굴엔 산고로 힘겨웠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었습니다.


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산통때문에 온몸에 진이 빠져 힘없이 늘어진 아내의 손을 잡아 주고 다른 손으론 땀방울이 송송 맺힌 이마 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고개만 끄덕여 주었습니다.


아기얼굴 봤어?


그럼. 봤지.


특별히 할 말이 생각안 나 두리번 대다가 몇일 전 아기이름 후보군들을 써놓은 쪽지를 외투 안주머니 에서 꺼내 보며 눈웃음만 주고 받았습니다.


아내와 내가 각자 추천한 글자를 교차해 조합한 열개의 이름을 놓고 고민고민 끝에 대외 공식적인 호칭은 우리 부부가 지은 이름으로 하고 할아버지 가 지으신 이름은 서운해 하시지 않게끔 가족들간 의 애칭으로 하기로 정했습니다.


김지수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첫 아기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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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28일 오후 2시 

○○○ 산부인과병원 


엄마 뱃속에서 지내다가 열달만에 세상밖으로 나 왔답니다. 엉덩이를 한대 찰싹 맞고 저 태어났 어요 출생신고를 하고 나서야 울음보가 터졌다네요.


따스하고 평온한 엄마의 품안에서 아무 근심없이 지내다가 세상밖으로 나오니 신기해서 어리둥절 했었던가봐요.


아빠도 엄마도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 부터 삼신할 매가 엉덩이를 때려야 울음이 터 했다 잖아 요.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났으니까 엄마맘은 잘 알지만 아빠는 마만큼 몰라요.


오늘 아빠의 얼굴을 처음 봤어요.

엄마뱃속에 있을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도 제 이름도 자주 불러 주셔서 목소리 는 알고 있었지 만 아빠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몹시도 궁금했 거든요.


엄마 사랑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는 내가 아기씨로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저를 너무너무 아끼고 사랑해 주셨답니다. 맛있는 것도 주시고 재밌는 동화책도 읽어 주시고 예쁜 노래도 많이 들려주셨어요.


행여나 저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까봐 감기약도 안먹고 나쁜 말도 안하고 착한 생각만 하셨대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을 잤답니다. 제가 아주 작고 어린 태아 때 일이라지만 엄마의 사랑을 또렷하게 기억하거든요.

나중에 세상밖으로 나온 후에도 밝고 맑은 샘물처 럼 살아가라고 좋은 책, 좋은 글을 들려 주며 사랑을 듬뿍 나눠 주신거 잖아요.


꽃밭에 물을 주듯 예쁘게 자라라고 소중하게 정성 을 다해 가꾸어 준 덕분에 건강한 몸으 로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답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오자 마자 간호사언니가 저울에 저를 올려 달고나서  

몸무게 4.3kg, 키 38.4cm.

보통 아기들 보다 발육이 아주 좋은 편이라고 아기수첩에다 적어 놓았어요.


엄마가 절 낳으시느라 영양분이 빠진 몸을 푸는 동안 잠시 엄마품을 떠났다가 다시 엄마품으로 돌아와 달콤한 엄마의 젖을 마음껏 먹었답니다.


엄마말로는 네살때까지 엄마젖을 먹었다고 하는데 엄마젖을 물고 있을 때면 너무 편안했어요.


젖도 잘 빨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젖을 물려고 엄마 품을 마구마구 파고 들었다는데 제가 그렇게 식탐 이 많았던가 그런 기억은 별로 없네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몸도 크고 머리도 커서 엄마 자궁속을 빠져 나올때 애를 먹였대요. 머리를 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당기는 바람에 제 이마에 빨간 반점이 생긴 거라고 한동안 엄마가 많이 속상해 했어요.


여자아이 얼굴에 흉이 생겨서 어쩌냐고 저보다도 더 걱정하셨죠.


실은요. 특수학교 중학부 다닐 때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했었는데 그 애를 만날때면 조금은 신경이 쓰였었지만 어쩌겠어요.

타고난 제 운명인걸요.

그리고 엄마 잘못도 아니잖아요.


지금은 붉으레한 자국이 자연적으로 없어 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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