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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04. 2023

지나간 대로

어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딱 그 정도만 볼 수 있는지 새삼 신기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내 이야기다 보면 이게 좀 낯 부끄러운 걸 넘어, 과거의 나라는 민낯을 까보기 무서울 정도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라는 말이 새파랗게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에게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그 '처음'이라는 말은 사실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이 있기에 써먹을 수 있는 말이다. 대개의 참을 성 없는 부류에게 걸리면 처음은 끝이 되고 과정이 어떻게 되던 상관할 바 없게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처음도 끝도 아닌 나는 무사한가'는 좀 관용의 깔대기를 치우고 들여다 봐야 할 필요는 있다. 뭐 대단히 스스로에 대해서 관대한 편도 아니지만 ,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하는 평가질에 내가 고만고만한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도 사실 아닌가. 자신에 대한 연민은 사실 모두에게의 후시딘이니까. 그런데 살다보면 생각보다 참 그 잣대가 널 뛸 때가 있다. 


 내가 썼던 과거의 글을 읽다보면 참 낯뜨거워 질 때가 있는데 . 마치 밤에 쓴 연애편지를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읽는 부끄러움이랄까. 그 연애편지도 사실은 아주 죽고 못사는 관계를 떠나야 낯 부끄러운 줄 아는 것이지, 그 안에 있으면 여태 그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아마 나는 이런 경우가 다른 이보다 잦은 빈도로 발생했던 듯 하다. 좋게 말하면 빠르게 오는 현타에 오지는 현실감을 통째로 받아치는 속도가 빨랐달까. 


나는 참 부끄러움을 자주 그리고 잘 느끼는 편이다. 이불킥 각이라고 하던데, 한번 걷어차면 네모 반듯하지 못한 이불은 돌고 돌아 발 끝을 덥지는 못하고 가슴과 배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곤 했다. 미국에서의 삶은 참 한국의 그것보다 자각타임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치고 들어와 의도치 않게 현자를 만드어 버리곤 했고, 나는 그 쓴물에서 단물을 빼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는 내가 영어를 곧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밥 벌어 먹는 언어가 영어고, 사는데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기에 현지인들과 어울려 사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니었나 보다. 


영어를 한번 말해 볼까? 이게 또 할말이 많다. 우리가 영어를 얼마나 징하게 배워온 사람들인가. 초등학교도 모자라 중 고등학교에 대학교 어학연수 그러다가 취업을 위한 영어까지. 아니 우리 나라 사람만큼 타국어를 모국어보다 더 열심히 배운 사람들이 또 있을까. 거기다가 미국으로의 유학이다 하면 아주 그냥 본의 아니게 토할 정도로의 영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나서야 죽지 않을 즈음에 똥은 치워야 하니까 졸업장을 준다. 이게 헛점인데 이 뭔가 '졸업쯩'같은 걸 하나 받으면 이로써 게임 아이템 하나 생겼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나도 그 중에 하나 였다. 도합 우리 아들 나이보다 많은 배움의 나이를 생각했다면 지금쯤 나는 최소한  모든 종류의 영어는 좀 들어먹어야 쪽팔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African-American 영어는 죽어라 안 들리고 못 듣는다. 노출이 덜 되어서라고 하기에는 꽤 많은 흑우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도 여전히 그들의 어미가 늘어지는 문장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익스큐즈미를 외친다. 


그러다 아이 친구 조부모님(미국인)과 절친이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 뻘인 그들은 독특한 솔직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었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꼭 가서 뵙고 밥을 먹고 오는데 희한하게도 꼭 우리 모자가 가는 날에는 삽겹살에 고추장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틀어주시곤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람들의 영어는 또 기가 막히게 귀에 박힌다는 사실이다. 아주 콕콕 들어와서 네다섯시간 수다를 떨다 보면 기운이 다 빠지는데.. 내가 영어를 되게 잘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막히는 대화가 없고 별말 없이 깔깔 웃어대는데 미국에서 가족이라고는 나와 아이 뿐이라 배려가 몸에 박힌 그들의 마음이 뜨끈해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 참 뒤에 나는 대도시에서 수 많은 인종과 일을 하게 된다. 미국인은 물론이고 인도인 유럽인 동남아시아인 중동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쓰는 공용어인 영어는 참 기가 멕혔다. 와.. 진짜 알아듣기 힘들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내 영어도 그 사람들에겐 참 힘들다... 나는 정말 몰랐다. 내 영어가 힘든 영어인지. 모국어가 아닌 이상에야 우린 그 밥에 그 나물의 언어를 구사하며 나는 잘났네 너는 못났네 하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하루를 버티는 중이었다. 한참 뒤에야 온갖 영어들이 모두 마음에 박히고 나서야 과거의 나는 어쩜 그런 영어를 쓰고도 살아냈나 참 용하다 싶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반추한다는 건, 단순히 추억의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새어나오는 당시 나에 대한 쪽팔림과 후회는 단순히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 것 밖에 안되보였던 나는 사실 그나마 좀 봐줄만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은 되게 못났던 나를 그냥 봐주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분명 되도 않는 말을 해도 같이 웃어줬을 터였고, 내가 하는 뒷담화에도 함께 수근거리며 편을 들어줬을 터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더러운 뿌리가 눈에 밟히기 마련인데 ,생각보다 이게 덩어리가 크다. 내가 죽도록 부정하고 싶은 부분이 아이에게 희끗하게 보일 때 느껴지는 감정이란 정말 기분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좋은 부모라는 사실을 최면 걸지 않으면 육아가 더 버거워 진다. 그러나 그 최면이 지나치면 자신은 괜찮은 것 같은데 애새끼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회한이 찬 한마디를 던지게 되는데 그 때를 조심해야 한다. 아이가 자라고 난 다음에 반추해 보는 부모 자신은 생각보다 되게 별로 였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는 부모인 나를 오히려 묵인해 주고 쓰다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부끄러운 나와 마주한다는 건 꽤 불쾌한 일이지만 왠지 그 낯뜨거움일 수 있는게 지금의 나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에 이제는 좀 익숙해 졌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촘촘하게 짜여진 퍼즐 안에서 그 쪽팔림이 살에 데일 정도로 뜨거울 수록 당신의 오늘은 딱 그만큼 봐줄 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살아내야 하지 않은가. 우리. 쏟아지는 시간 안에서 뭐든 건질 것 하나 있는 삶이여야 하지 않나 싶은 꼰대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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