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그림없이 글만 나열게 된 계기는 아마 좀 쑥쓰러웠던 모양이지. 고만 고만한 글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흔히 어플같은 걸 깔고 셀카를 올리는 것 같아 부끄럽다 생각했던 것 같다. 수만장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두고, 혼자만 낄낄대고 있자니 여간 나 같아서 차라리 속이 편했다. 제목 앞에 두는 의미없는 숫자도 떼어버리니 한결 글 같이 보였다.하얀 백지에 까만 글이 송송 박히는 걸 보니 마음이 가뿐했다.
대충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씨부리면서 이게 인생인 것 같아, 하는 나부랭이 짓거리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찐개찐 사이에서도 도도함은 부릴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는 객기도 좀 부려본다. 그런 의미로다가 오늘은 좀 완성하기 어려운 질문의 답변을 던져볼까 한다.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이 삶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사람처럼 두려움에 휩싸여 매 발자국을 함부로 내딛기가 어려웠다. 10대의 철부지 소녀 시절에는 그 때만 유일하게 허용되는 어리석음도 부려보았지만 20대 언저리에서 언제나 기저에 깔린 마음의 소리는 '그렇게 살다간 ㅈ 된다' 였다.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건 진작에 알았고, 한살 덧붙여 올라가는 나이에 탑을 쌓듯 그 기제도 나이를 먹어갔다. 미신이라는 걸 믿지도 않으면서 혼자 옭죄이는 걸 즐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신나게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는 뒷편에는 항상 창자를 쑤셔대는 따끔따끔한 바늘이 존재해서 였을까. 어느 누구도 나를 구속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구속했다.
혹자는 이걸 두고 중용이다. 혹은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쓰겠지만, 묘하게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또 다른 대단한 'ㅈ 됐네'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재를 격하게 환영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아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억센 인생의 굴레가 나를 잡아먹을 정도였나, 하고 생각하면 죽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동네 도서관 하나를 삼켜 먹을 때에는 장르 불문하고 어른들 책도 교과서 사이에 껴서 보곤 했으니, 그 속이 참 시끄러웠다. 지나가며 하는 소리 하나하나에도 나는 참 예민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되레 짐작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삶이 에세이의 그녀의 목소리에는 삶의 풍파가 진득하게 풍겼고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삶의 바탕화면이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설프게 했다. 이런 감수성인지 기운인지 모를 것들이 청소년기를 잠식하고 대학에 들어가니, 아유 이건 뭐 꽃밭이었다. 하루에 미팅 한번은 필수, 격주로 들어오는 소개팅으로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낙제를 면하고 졸업을 하는데 취업이 되겠는가. 그 와중에도 내 머리속은 와글와글 책속의 주인공들이 씨부리는 소리로 가득차 있었고, 세상은 소설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 때부터 뭔가가 잘못되었다 느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잘못은 되어 있었는데 눈치를 못 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묘하게, 교훈을 주려고 태어난 사명감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 아니 대놓고 자기 개발서는 태생이 그런거라 치는데, 그도 아닌 대하소설마저도 뿌리가 묘하게 닮아 있어 조용하게 인생을 디스해놓고 그래도 니가 사는 인생은 안 그럴수도 있어.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지라며 상상력을 종용한다. 나는 그 헛된 그림을 믿었던 것 같다. 어쩌면 수많은 몽상가들이 혹은 예술가들이 그리는 꿈과 그림을 스스로 신나게 그려놓고는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 안에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은 다 봤다고 착각을 대단히 해 놓고, 실제로의 인생은 어쩌면 현명하게 다져진 내가 알아서 잘 조질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종국에 나는 예술가도 되지 않았고, 소설가도 그리고 작가도 되지 않았다.
나는 취업이 안되는 취업준비생이었고, 놀고 먹을 순 없으니 들어간 대학원생이었고, 계속 취업이 안되니 시집이나 갈까했던 준비되지 않은 잉여인간이었다. 이쯤되니 내 삶은 엉망이었고, 이 정도로 고생길이 시작되었다며 오만해 했었다. 사실은 서막에 불과한 이 스텝들은 터널이 서서히 시작되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였네, 가 되었고 나에게는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릴 일들만 일어났다. 그 간의 글들로 통해 볼 수 있는 내 인생은, 간단하지만 팩트에 가까운 고생길이었고 겪으면 겪을수록 인생 만렙이 아닌 쪼다가 되어갔다.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하나씩 해나가고 나면 게임에서의 아이템빨로 승리해갈 수 있을거라고 하는데, 나는 그저 두렵기만 했다. 앞으로 더 억세게 안 풀리는 일만 일어날까봐, 무섭고 손끝이 차가워져만 갔다. 아이한테는 그저 강하기만 한 엄마로 보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겁쟁이였다.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대룩에서 떨궈져서 살아는 내야겠는데, 어쩔 때는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것 조차 병적으로 거부하는 작은 인간이었다.
인생은 여전히 냉탕과 온탕의 반복이었고, 그 와중에 병신이 된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렇게 삶은 지리하게 반복이 되었고, 일년 365일 중에 94일 정도는 숨쉴만 했다가107일 정도는 울지 않고는 베길 수 없게 뜨거웠으며 23일 정도는 약먹은 애처럼 하이되었다. 나머지는 얻어걸린 덤처럼 죽지 않고 살아갔던 것 같다. 이것도 몇해를 반복하다 보니 마음에도 관성이라는 것이 생겼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돌다보니 근육이 박혔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10년 정도를 하고 보니,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뱃속이 두둑한 아재 비슷한 게 되어 있었다. 아마 체념을 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옘병 이렇게 가도 죽지는 않겠지, 이제까지 쳐본 맨땅에 해딩보다 더 하겠어? 라는 질문에도 '응 더하겠어!'라는 답변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한 ㅈ 같은 세상을 만나면 마음이야 떨리고 안정이 안되긴 하겠다만 그렇다고 '먼저 죽는 게 편할 것 같아' 라는 되바라진 소리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이 불공평한거야 베이스고, 그 와중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야 보통은 간다는 게 다수의 답변에, 나는 그 앞에서 대단히 손뼉을 쳐주고 싶다. 그 어려운 걸 나는 내 청춘 다 바쳐서 안 걸 그대는 그리 빨리 알아버린 거라면, 그건 절대 우러러 봐야 될 일이다. 그리고 간간이 우리 손에 쥐어지는 행운들. 그리고 그 하나를 까서 먹어버리면 나머지 불운들이 우르르르 몰려올 것 같은 느낌에 제대로 그 행운을 즐겨보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볼 때면 또 그렇게 연민이 느껴진다.
보통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다.
가을 밤처럼 익어만 간다고 해서 한해가 지나는 겨울의 그 어귀가 아니었다. 질문을 던져놓고 그 근처도 못가 헤매는 나이지만 어쩐지 내뱉고 나니 오래도록 똥독에 오를 나를 끄집어 낸 것 같아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