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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16. 2023

헬 천조국 생존기


익숙함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고, 행복이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또한 익숙함은 스스로에게 나태함을 선사해 옆을 보지 않고 자신만을 보게 만들어 연민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 해본 것같은 느낌은 때로는자신감도 안도감도 주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개구멍을 만들기에 딱 좋다. 


처음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날이 생각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말에 친구는 이 플렛폼을 소개해 줬다. 작가 응모하기를 몇번, 이 안의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서 나와 같은 공감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기함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누군가는 당신이 쓰는 이 글이 당장 쓰여진 글이 아니라, 애초에 경험의 시작부터 세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십년짜리 글인 셈이다. 


그 사이에 글의 목적은 '살기 위해 쓰는 글'에서 '살아 남는 글'이 되었고, 일상은 나에게 살아내며 근근이 이어오던 명줄을 잡아 당기며 '끝까지 살아낼 것'을 종용했다. 가끔은 거지같은 일상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테리가 된 착각마저 일으켜 일종의 환각 작용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그런 명확하고도 효과가 좋은 플라시보 효과가 없었다. 


일단, 지구에서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건 애를 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이고진다.

그 어디든 누구나의 사정은 하나씩 혹으로 달고 살고는 있는데, 하필 미국이었던 것이 나에게 있어서 땅파고 숨어 지내고 싶은 본능을 짓밟으며, 수도 없이 차가운 바람을 쏘이는 경험을 살게 했다. 멀리 봐야 아름다운 존재가 있든, 이 나라와 내 인생도 참으로 멀찍이 떨어져 봐야 봐줄만 하다.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존재는 하나는 있는데 그런면에 있어서 미국은 일단은 그저 살고 싶었던 나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잠잘 공간을 내주었다. 


이러니까 되게 인자한 미국같지? 

웃긴다. 그건 아니었다. 소수 인종인 아시아인이 받을 수 있는 인종차별을 주던 받지 않던, 그게 자격지심 그 언저리던 내가 눈치를 봤던지 간에 어쩐지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 쪽 구석자리로 몰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도 있다. 관공서나 마트 직원이 한껏 굴려서 잘 말했다고 생각했던 말을 못 알아 듣기도 한다. 어떤 백인여자는 분명 알아들었던 게 맞는데 부러 못 알아 듣는척 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을 때도 있다. 괜히 커피숍에서 '투고'하는 라떼 한잔에 팁을 안 주면 다음번에 '칭챙총'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눈물 머금고 18% 를 포함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주말에 도시 한복판에서 묘하게 나는 쑥태우는 냄새는 마리화나 냄새일 확률이 1000%이고, 심지어 몇주에서는 합법이라 대학교 근처에서도 가게를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예전에 아이랑 크게 싸우고 화단에서 울고 있을 때 아이가 바로 옆집에 엄마가 나간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이웃은 총을 옆에 끼고 우리 집으로 경게태세로 들어왔다. 총기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그 한방에 운 나쁘면 명줄 끊기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 자신이 아픈 걸 미리 알고 병원 예약을 해야만 하는 기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이 나라를 혼자 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그 간의 글들과 윗단의 그들을 혼자 겪었더라면? 사이사이에 껴 있는 엄마 노릇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천조국 같은 미국을 경험하는 게 가능했으려나? 하여튼 상상으로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을 해 보는데, 그 때마다 결론은 '혼자서는 미국에 남지 않는다' 였다. 2인 가구가 부부가 아니라 모자이거나 그 반대인 경우 밥벌이까지 하며 사는 건 어딜가나 힘든데, 생각보다 인간의 생존본능은 디폴트라 하기에는 오지게 강한 것 같다. 나에게 있어 미국 살이는 그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아이의 입에 풀칠을 하지 않는 데에 온 집중을 다 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죽지 않는다. 살아야만 한다는 극강의 세뇌를 풀가동하고 살아온 삶에서  그 곳이 아프리카던 헬조선이던 미국이던 상관없었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아이는 멍청한 엄마보다 생각보다 강했다.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지 몰랐다. 아니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 고개를 쳐들고 욕지거리를 하는 순간, 그건 살고 싶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이를 낳을 때 진통이 어마어마했다. 그냥 총맞고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무통 주사도 듣지 않아 잠시 혼절하다 아이를 낳았다. 이렇게 한번 하고 나니, 이런 게 죽는 느낌이겠구나 했다. 그 잠깐동안 정신을 놓았을 때에도 나는 끊임없이 눈을 뜨려고 아래도리에 힘들 주고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강렬했던 순간은 태초의 내가 어떤 존재임을 명명백백히 알려주었다. 


희한하게도 삶은 단 한번도 나에게 죽으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사실 ㅈ 같은 인생 나만 왜 이럴까 하던 순간에도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부지불식간에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화염같은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 삶은 나였기에 죽을 것 같으면 잠을 잤고, 눈을 뜨기 싫은 하루면 밥을 먹었다. 정말 숨이 간당간당해서 턱까지 차오를 때면 옆에서 자그맣게 메모를 만들어 컵라면 옆에 두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도무지가 죽고 싶지가 않았다. 


누구나가 그 할당치만큼의 빈틈과 숨이 멎도록 아픈 순간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힘든 순간이 있을 것이다. 

힘들지 말라는 소리는 할수도 없다. 그 숨통은 어느 이는 크기도 어떤 이는 작아서 내는 비명의 소리는 다 각기 다르다. 지옥이 따로 있겠는가, 그저 사는 것 만으로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아직 그 숨은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에 집중하고 싶다. 아니 '나 좀 살만하구나'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그리고 그 대 입에서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아마 정말 코에 숨이 들락날락 거리는 게 정말로 멈추어 지는 날이 오긴 할거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사는 세상이 그저 엄마의 자궁 속 같다는 생각을 한다. 때가 되면 양수가 흐르고 내가 빠져 나오듯, 왠지가 죽을 그 날에는 이 한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보다 이제 죽는 나를 스스로 도닥이며, 한껏 안아 주고 싶을 것 같다. 너무나 수고한 나를 쓰다듬으며 남은 이들에게 안녕을 고할 것 같다. 정말 그럴 것만 같아서 오늘도 나는 눈을 감고 근근히 하루를 마친 나의 오랜 소망을 꿈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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