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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 Scent Oct 24. 2024

뜀박질하는 절름발이

세상에 사람이 어쩜 그렇게 잘 잊을 수 있는지, 튜브형 로션을 칫솔에 찍하니 짜놓고 입에 우겨넣고 토할 듯이 물을 찾는 나는 참, 뇌가 납작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다(뭔 상관). 


무슨 일이 생기면, 크게 호들갑 떨지도 못하고 아 어쩌다 저런 일이.. 하고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해결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둔다. 생계에 관련이 될 것 같으면 살짝 심각해졌다가 이유없이 수도물을 세게 틀고 평소보다 세제를 다섯배는 많이 짠다. 방울이 퐁퐁 거리는 반짝임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릇의 더러운 부분을 과장해서 벅벅 닦는다. 이내 안정을 되찾은 나는 곧 발을 동동 구르지만 그렇다고 사건을 한큐에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보다는, 내 앞에 있는 맛살을 아들이 다 먹어버렸을때 나는 슬프다. 찹쌀 꽈배기를 입도 안댄 것 같은데 반이 없어졌을 때 마음이 꽁해진다. 다 닳아진 자동차 타이어의 홈을 만져보며 오오오 곧 터지겠는데 하고 한 일주일 더 타지? 하는 마음에 목숨을 살짝 길바닥에 내놓고 산다. 기껏 빼놓은 뱃살이 삼일 마신 와인에 뽀얗게 다시 올라올 때 더 조바심이 난다. 


그렇게 오늘만 산다. 


아니 오늘만 사는 애가 글쎄 연금도 그렇게 열심히 넣는다. 아니 주식도 하고 저축은... (못하고), 직장 생활에 휴가 하루 내는데 그렇게 눈치를 본다. 내야 하는 보고서가 마감일에 다 끝나지 못하면 발 하나를 달달 떨면서 옆에 동료를 그렇게 볶아댄다. 


그런 나는 매일 같은 점심을 싼다. 

아마 한달내내 그 메뉴만 고집할 거다. 어차피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이라 매일 먹는 점심까지 별다르게 먹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회식이라도 하게 되면 내가 제일 많이 먹는다. 마치 그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처럼.그래서인지 누군가 하나 새로운 간식을 챙겨주면 내 사랑은 온통 그의 차지이다. 이율배반적이다.


그리고 왁자지껄하게 손바닥을 치며 웃는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사실 안 아플지도?).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내 웃음소리에 옆 부서 사람들까지 무슨 일이냐며 같이 웃자 한다. 이정도면 억지웃음도 능력이다.


아니 또 사고 싶은게 그렇게나 많다. 

장바구니에 사지도 못하는 물건들이 만불(한화로 약 1300만원정도)이 넘어간다. 옷장도 터질 것 같고 지네병에 걸렸는지 그놈의 신발은 사도사도 없다. 누군가는 마음이 허해서라고 하는데, 허하지 않아도 이럴 것 같다. 


편식하는 아이의 등에 스매싱을 날린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학교 알림에 성적이 띠링하고 뜰 때마다 문자한다. '사랑하는 아들, A는 Average이고 B는 Bad야. 우리 사이에 C는 없어' 라며 점수 에누리를 요구하는 아들의 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 잘했냐는 말에 뻥 두스푼 담아 ' 어 와안전 잘했다'


그래서인가. 

불행이 슬몃 'hoxy....계십니까..'하고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문을 열어준다. 매일 들어오는 일상인 줄 알았던거지,멍청한게.


그리고 살짝 기대한다. 

'아 너무 지치게만 하지 마' 하고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눈감아 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지나가면 나는 또 무슨 아이템이 생기는거야? 

무심함? 

차돌같은 단단함? 

넓은...마음(허헛)?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능력(꿈..도 커)? 


일화를 소개하자면, 갑자기 잠긴 회의실 문도 당황하지 않는다. 언젠가 잠겨 본 적이 있거든. 철사로 요로케 요로케 하면 되요. 하면서 신용카드 하나를 꺼내어 문과 틈 사이로 내려 꽂아 여는 나를 보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쟤 원래 저런 애였어" 하며 당황했다고 한다. 


그렇다.

별의 별일은 나를 빈틈없이 만들어 주지는 않고, 그냥 필요한게 많은 애로 만들어줬다. 

하여튼 차 트렁크에는 없는 게 없다. 바퀴 바람 넣는 도구, 비옷, 담요, 비상식량, 구급상자, 물휴지, 그냥 휴지, 심지어 크기별로 다른 장바구니에 썬크림 심지어 수영복도 있다. 


그래서 아이가 뇌전증으로 발작이 심해질 때면, 약으로도 차도가 없는 것 같으면 한 시간 정도 진탕 울어버리고 음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본다. 냉장고에 가득찬 블루베리 딸기 연어 토마토 브로콜리..(만 있어도 되는데 어쩌다 보니 불닭소스도 있고 냉면도 있고 떢복이도 있고 순대국도 있고 버터도 있고 쥐포도 있네?)


나 어쩌면 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되니, 후려치기도 잘 안된다. 

생각보다 내 주위에는 나를 끌어올려주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외면했을 뿐이지.


혼자서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이라 생각했을 지 모른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도 사실 내가 억지로 페달을 밟아 우직히도 가는 것이라 스스로를 토닥거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고 가는 모든 짐들이 나에게만 닥치는 일이라고 하늘에 육두문자를 쏟았을 수도 있다. 


연민도 과하면 병이다.

이렇듯 사람이 참 객관화가 안된다. 


가지런히 필통속의 연필처럼 정리를 해 보자면, 사실 내 앞의 어그러진 삶은 내가 만든 망함의 한 조각이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그 길을 선택하고 지 팔자 내가 꼰 것도 나임이 자명한 사실일텐데 말이다. 사실은 우리는 완성본을 모르는 퍼즐을 가득 품안에 넣고 무슨일이 생기면 그 때야 겨우 한개를 끄집어 내어 '이건 뭐꼬'한다. 역시 인생은  풀리지 않는 난제라며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라 착각한다. 


개소리다. 


혼자 앓는 소리도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마음으로 지옥을 다녀와 보니 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훈련이 필요했다. 

가끔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가끔은 쇼파에 널부러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려봐야 한다. 

가끔은 이생망 기분으로 번 돈을 사고 싶은 것에 올인해서 다 써보기도 하고, 내가 파 놓은 동굴에서 내 살을 파 먹어가며 한번 정도는 죽어보면,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인생의 퍼즐의 완성본이 지금 보일리가 만무하다. 

다만 내 코 끝의 숨이 멈추게 되었을 때, 맞춰진 그림이 나를 보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잘 버텼어'하고 엄지 춱! 해 줬으면 좋겠다. )


희망적이지 않을 때에는 굳이 힘내지 않고, 대신 즐거울 때에는 누구보다 크게 웃으며 원래 이게 내 인생이라며 착각하며 살고 싶다. 


불행과 행복의 양날 사이에서 나는 깍두기다 : )


절름거려도 묶인다리 푸르지 않고 함께 뛰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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