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기분이 들떠있다. 몇 달간 기다려오던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다. 친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비록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평소 늘 가고 싶었던 프라하는 아닌 가까운 동남아지만,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본적이 너무도 오래전이라서 그 기대감으로 인해 한껏 흥분되어 있다.
친구들과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하고, 스파도 하고, 마사지도 받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선탠도 해보고 바다에서 해볼 수 있는 각종 즐거운 놀이들도 잔뜩 할 계획이다. 그동안 아이들은 남편이 봐주기로 했다. 그동안 20년 봉사했으니 이번 한 번만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입이 튀어나왔지만 새로 나온 게임기를 사준다는 약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즐거운 인생이여~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절친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여행은 함께 하지 않는 친구였다.
이 친구는 당신과는 달리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고 여전히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다. 그런데 엄마가 쓰러지셨단다. 전화 속 친구는 평소와는 달리 놀라고 당황하는 기색이 명백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 이 세상에 유일한 가족, 그 사람이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친구에게는 지금 인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 당신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신은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 꼭 가고 싶은 여행이기도 하고, 정말로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냥 떠나려니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하다. 친구의 불행을 여행 때문에 외면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무리 가고 싶었다고 해도.
하룻밤을 꼬박 새워 고민하고는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친구들에게 이번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사정을 구했다. 친구들은 몹시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이해해주고 이번엔 자기들끼리 다녀올 테니 다음에 꼭 함께 가자고 신신당부했다. 참 좋은 친구들이다.
여행을 취소하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어차피 아이들은 남편이 봐주기로 했으니 이번엔 힘든 친구를 위해 모든 시간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 바리바리 싼 후 병원으로 갔다. 당신이 올 것이라고 당신이 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친구는 깜짝 놀란다. 정말로 고마워하면서 자신 때문에 여행을 취소한 것에 대해서 무척 속상해한다.
당신은 씩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물론 당연히 아쉽긴 하다. 그래도 결정하고 나니, 그리고 병원에 와서 고마워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울기만 하던 친구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되살아났다. 다행히 친구 어머니도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 며칠이 지난 후 친구는 당신에게 말했다. 정말로 고맙다고, 그리고 너의 그 따뜻한 마음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너도 그랬을 것이라며, 별 것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당신 역시도 마음 깊은 한구석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동남아 여행 중 들어갔을 뜨거운 스파보다도 더한 따뜻함이다. 둘은 서로를 깊게 안아준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이타적인 행동의 정답과도 같은 예가 될 것이다. 당신은 즐거운 여행을 포기하고 친구를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했다. 그래서 결국 친구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당신도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친구를 도울 수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만족한’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정신적으로 만족하게 되었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문득 그것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돕게 되면 왜 정신적으로 만족을 하게 될까? 모든 만족이 이득을 얻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그런 종류의 정신적인 만족은 어떤 이득을 얻고 있는 상황인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이득은 크게 두 가지 시점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단기적 시점의 이득이다. 그것은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며,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장기적 시점의 이득이다. 당장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도 미래의 멋진 몸매를 위해서 참는 것이며, 엄마가 쓰러져서 힘든 친구를 돕기 위해서 병원에 가는 일이다.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모두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제일 좋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단기적 행복은 장기적인 불행이 되기 쉽고, 대부분의 장기적 행복은 단기적으로는 불행하기 마련이다. 장기적 이득인 멋진 몸매를 얻고 싶다면 단기적 이득인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참고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한다.
당신은 단기적 이득인 여행을 취소함으로써 친구의 마음을 얻은 장기적으로 이득을 얻을 기회를 얻었다. 아마도 그 친구는 당신의 도움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훗날 당신이 힘들 때 당신에게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이득이다. 그러니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장기적 이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당신이 여행까지 취소하면서 도움을 준 친구가, 나중에 당신이 힘들 때 정말로 당신을 도울까? 오늘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다가 일주일 후에 죽게 되면 무슨 소용일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장기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늘 이득이 아니다. 그러니 오히려 단기적 이득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 많은 사람들이 그냥 계획대로 여행을 떠난다. 지금 친구를 위해 여행을 취소한다고 해서 그 친구도 나중에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줄 보장 같은 것은 없으며, 여행을 취소하게 되면 같이 가기로 했던 또 다른 친구들에 대한 배신도 된다. 더군다나 취소한다고 해서 이미 들어간 비용을 되돌려 받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그냥 떠나는 편이 더 낫다.
결국 이타적이란 평가를 받는 행동들이 가진 결론은 하나이다. 눈앞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기적인 것은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에 투자하느니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이기적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스크림이 원래는 동생이 먹기로 했던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똑같은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이 타인에게 이득이 되면 이타적이 되고, 손해가 되면 이기적이 된다.
그 판단의 기준점은 내가 아니라 '남'이다. 또한 타인의 행동에 대한 판단 주체 역시 '나'이다. 사람들이 나를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내가 사람들을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