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떠나 오기 전 나는 처절한 사랑의 마침표를 찍었고 반복되는 삶에 지쳐 있었다. )
양회복은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한 뒤 다시 오토바이 앞에 섰다. 추운 날씨와 더불어 타고 온 오토바이로 몸 전체가 얼어 있었기에 입도 때기가 어려웠지만 나는 선 채로 입을 뗄 수밖에 없었다.
“회복씨. 회복씨에게 농장을 가꾸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그는 한참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먹고사는 일이죠.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나는 얼어붙은 입으로 발음이 조금 새어 나가며 질문을 이어갔다.
“지루하거나 답답하다 거나 싫증이 나고 혹은 문득 떠나고 싶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그는 또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아, 네… 지루함,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싫증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면, 그런 감정들을 느낄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나는 이를 다닥-다닥 부딪히며 말을 덧 붙였다.
“저기, 제가 해야 할 집안일도 있고, 추위를 많이 느끼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희 집에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세요.”
추위에 정신 나가있던 나는 반가운 제안에 덜컥 알겠다고, 고맙다고 한 뒤 다시 한번 오토바이 뒤 좌석에 안착했다.
인정할 수 없는 이별의 후유증으로 시작된 줄 알았던 이 여행은 나를 자꾸만 어디로 데려가고 있었다. 이 여행이 내릴 막이 분명히 있겠지. 하며 내가 살던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하루 종일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달- 거리는 오토바이와 두 남자는 양회복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은 도저히 21세기라고 볼 수 없는 구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찰나였지만 아궁이 같은 것도 볼 수 있었고 마당은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꼭, 집을 지키는 개 한 마리가 있을 것만 같았지만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 같은 먼지가 쌓인 개 집이 입구 쪽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또 내게는 완연하게 낯선 농기구들과 여러 금속 덩어리들도 볼 수 있었다. 집은 도대체 언제 지어진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한 뒤 볼을 꼬집어 볼까 싶기도 하였지만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양회복이 오토바이를 세운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유는 그곳의 땅만이 바퀴자국의 잘 맞는 옷처럼 들어맞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전체적으로 말 그대로 고즈넉했다. 그의 집을 남몰래 잠시 둘러보던 중 그는 들어오라며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에 응한 뒤 문 턱을 넘어가는 순간 괜스레 들어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이 문 지방을 넘는다는 것이 너무나 개인적인 공간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단순한 호기심이 어떠한 한 남자의 지극하게 개인적인 공간에 입성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그전에 신을 가지런히 두었는지 확인한 뒤 그 공간에 제대로 입장하였다. 그는 아궁이에 불을 좀 더 피워야 한다며 두꺼운 이불 하나를 나의 몸 쪽으로 밀어 넣고 나갔다. 그 뒷모습에 시선을 잠시 두었다가 이내 방안을 살펴보았다. 이 공간은 직접적인 설명이 어려웠다. 흘러왔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어딘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였고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하였으며, 향수를 불러오는 것 같기도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 같기도 한 정말 이상한 공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분명해 보였던 것은 양회복은 현재 홀로 지내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과거에서부터 홀로 지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문 밖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이 방 안에서 느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차갑기도 따뜻하기도 했던 그 감각을 불러왔고 그 감각은 이 논산을 향해 출발했던 기차 안에서 휴대폰의 부재로 인하여 미처 듣지 못하였던 그 노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곡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 곡은 Erik Satie – Gymnopdie No.1이라는 곡이었다. 음악 듣는 것을 즐기지만 거의 귀로만 즐기기에 종종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과 아티스트를 잘 모를 때가 많았기에 이 곡을 기억해 내지 못했을 그 당시에도 기억하지 못한 것은 내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처럼 시간이 흐른 뒤 선명하게 기억해 낸 것은 처음 겪은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 순간 양회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