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서장실 습격사건
무작정 기자정신 vs 예의 없는 기자
기자 하면 수습 때 경찰서장 방에서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간혹 90년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영화를 리메이크한 드라마 <친구>에서도 기자가 된 상택은 경찰서장 방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물론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요즘은 저런 짓을 했다가는 금세 소문이 퍼져 타사 정보보고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경찰서장은 보통 총경 계급이다. 일부 관내 규모가 큰 경찰서는 경무관 계급이 경창서장 자리를 맡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강서경찰서, 송파경찰서, 분당경찰서 등이 있다. 이들 계급은 공무원 3~4급에 해당한다. 아무리 기자라도 한 관서의 장에게 전통이라며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무직으로 일하며 어떤 관서의 장을 독대할 일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마와리를 돌면서도 경찰서장을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걸 막내 조 기자가 해냈다. 지금은 퇴사한 조 기자는 8살이나 어린 동기였는데, 항상 너무나도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 기자가 마와리를 돌 던 라인을 가보면 경찰들도 밝은 모습을 칭찬하고 기억했다.
조 기자는 경찰서장도 그저 해맑게 만나고 왔다. 당시 광역 영등포라인에는 수습이 나와 국제부 장 기자, 퇴사한 조 기자가 함께 배치되었다. 나는 영등포라인, 장 기자는 마포라인, 조 기자는 관악라인을 맡았는데, 광역 영등포라인 동기끼리의 단톡방을 만들어 수다를 떨곤 했다. 어느 날 조 기자는 경찰서장을 만나고 왔다며 단톡방에 이야기를 했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다. 조 기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서장실이 있길래 들어갔는데?”
기자이기 때문에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마인드는 오히려 사회생활 경험이 없던 조 기자에게 확실히 잡혀 있음을 깨달았다. 이 날 이후로 나도 마와리를 돌며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무작정 찾아가곤 했다. 어쩌면 내게 무작정, 일단 해보고 보는 기자의 마인드를 갖게 해 준 사람은 조 기자가 아닐까 싶다.
마와리를 돌며 처음 경찰서장을 만난 곳은 강서서였다. 몇 번 방문해 보니 건물 구조를 익히게 되었는데 1층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도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샛길을 발견했다. 물론 다음 방문 때부터는 폐쇄가 되어 있었다. 이 날은 샛길을 통해 경찰서 건물 내 모든 부서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그러다 서장실을 보게 되었다. 조 기자가 며칠 전 서장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장실로 직행했는데 서장님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행히 비서님께서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며 명함을 받아 주셨다. 서장님이 들어오시면 일정을 확인해서 연락을 주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장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명함을 전달하고 연락을 준다고 해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장실을 나온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서님께 전화가 왔다. 지금 뵐 수 있으니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서장님은 문 앞까지 나오셔서 환대를 해주셨다. 서장님은 구로서장 시절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비롯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연이 인연으로 편에서 언급했던 치안정감 계급의 그 분과도 잘 아는 사이었다. (알고 보니 경찰대 동기셨다.)
이렇게 서장님과의 첫 면담에서 좋은 기억을 남겨 이후로는 모든 경찰서의 서장님과 면담을 하려 시도해 봤다. 무작정 만나려고 하다 보니 실제로는 동대문서 이외의 경찰서에서는 서장님과 면담할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종로서에서는 무작정 서장실로 습격했다가 로비에서 방호관님께 혼난 적도 있었다. 방호관님께는 정중히 사과를 드렸고, 나중에는 워낙 자주 뵙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졌었다.
성북서에서는 타사 기자 덕분에(?) 경찰서 출입이 어려워졌던 일도 있었다. 철저히 인솔자를 불러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타사 수습기자가 경찰서장을 만나겠다며 경찰서 안을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경찰서에는 보안구역들도 있다 보니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던 것이다. 아마도 선배에게서 서장을 만나라는 미션을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날 기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마와리를 돌리는 언론사에서는 수습들에게 난처한 미션을 던져주곤 한다. 아무리 선배 지시에 따라야 하고, 기자정신을 길러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상대가 누구든 서로 예의는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