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습일지 #마음의 고향
우리가 매일 그곳을 가는 이유
마와리를 돌다 보면 마음의 고향 같은 경찰서가 생긴다. 특정 경찰서를 자주 간다고 해서 마음의 고향이 되지는 않는다. 이상하게도 나와 잘 맞는 경찰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경찰서가 있다. 그렇다 보니 기자 개인마다 마음의 고향은 다를 수 있다. 그렇게 고향이 생기면 나중에는 그곳을 자주 찾아갈 수밖에 없다.
라인이 바뀔 때마다 동기들과 이전 라인에 대해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이때 각 경찰서별 특징 같은 것도 동기들에게 정리해서 전해주곤 했는데, 동기들도 각자 생각하는 마음의 고향이 달랐다. 많은 동기들이 고향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정 동기에게만 고향 같은 경찰서도 있었다.
혜북라인에서는 혜화서가 동기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보통 1진 기자실이 있는 경찰서를 마음의 고향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워낙 기자들이 자주 드나들다 보니 경찰들도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광역 중부라인에서는 여러 경찰서를 돌며 마음의 고향을 만들 수 없었다. 당시 1진 선배는 수습들을 매일 같은 경찰서만 가도록 지시했다. 전국부에 가있는 장 기자는 중부라인에 있을 당시 매일같이 용산서만 가다 보니 경찰들을 찾아가기도 미안하다고 토로했었다. 당시 장 기자는 매일 용산서 흡연구역에 뻗치고 있었는데, 경찰들도 의아했는지 뭐 하는 사람이냐며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고 한다.
나도 광역 중부라인에 배치되었을 때 비슷한 경험이 있다. 종로라인에 뿌려진 뒤 매일같이 종로서만 마와리를 돌았다. 어쩌다 인사한 수사관 한 분이 있었는데, 흡연장에서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은 항상 단답이거나 바쁘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몇 주가 반복되었더니 수사관님이 먼저 와서 말을 걸었다.
“아니, 도대체 왜 매일 여기 와있어요?”
이 날부터 수사관님은 경계를 허물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과거 수사를 하며 있던 에피소드를 40분 넘게 들었던 적도 있다. 경찰서 로비에서 보고를 쓰고 있으면 커피를 들고 와 먼저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1진 선배의 지시 때문이었지만 매일 같은 곳을 가다 보니 이렇게 취재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종로라인에 있을 때 마음의 고향은 성북서였다. 종로서도 워낙 자주 가다 보니 알고 지내는 경찰들도 많아졌지만 성북서는 많이 가보지 못했어도 항상 마음이 편안했다. (성북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종로서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 일부러 경복궁 근처 지파 마와리를 돌며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종로서가 마음의 고향이라서는 아니었다. 워낙 오랜 시간 마와리를 돌 다 보니 마와리 자체가 익숙해져 생긴 여유였다.
영등포라인에서 마음의 고향은 강서서였다. 강서서에서도 좋은 분들은 2주 차 마와리 때 대부분 뵙게 되었다. 그중 본서 팀장님 두 분과는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나중에 식사도 했는데, 한 분은 다음에 영등포라인에 배치되었던 전국부 장 기자와도 가까워져 장 기자에게 내 퇴사 소식을 듣고 먼저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강서서에는 지파 팀장님 한 분과도 가까워지게 됐는데, 주말에 팀장님이 근무하실 때 일부러 찾아가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수습기자이고 귀찮은 존재라고 하지만 이렇게 까지 매몰차게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경우도 많았지만, 정말 따듯하게 대해주던 감사한 경찰 형님들도 많았다. 언론중재위원회로 자리를 옮긴 지금도 종종 연락을 드리고 만나는 형님들도 있지만 오늘은 그동안 연락도 잘 드리지 못했던 감사한 분들께 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