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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크팍 Dec 18. 2023

나의 수습일지 #종로 지박령

마와리를 피하는 방법

마와리 세 번째이자 마지막 라인, 광역 중부라인 출근이 다가왔다.


중부라인 2진은 포천에서 첫 대면을 했던 뼈기자였다. 당시 동기들에게는 ‘스윗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만큼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선배였다. 선배에게 주말에 출근 전 지시를 받아야 했다. 카톡 프로필을 보니 휴가 중이라는 사진이 떴다. 곧바로 1진에게 연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휴가 중인 뼈기자에게 연락했다.(아직 사무직 물이 안 빠졌었나 보다.) 뼈기자는 일주일 정도 여름휴가를 떠났다며 1진인 김 선배에게 지시를 받으라고 했다.


지금은 타사로 이직한 1진 김 선배는 악명이 높았다. 직전 중부라인에 있던 전국부 장 기자는 4주 내내 라인 내 경찰서 한 곳만 보냈다며 괴로워했다. 당시 장 기자는 용산서 마와리를 돌았는데, 오죽하면 경찰들이 먼저 와서 왜 매일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신당역 살인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종로경찰서 한 곳만 주구장창 마와리를 돌아야 했다. 그야말로 종로 지박령이었다. 선배마다 마와리를 돌리는 방식은 달랐다. 김 선배의 방식은 초반에는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괴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는 방식이었다. 나중에는 종로경찰서를 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편하게 마와리를 돌 수 있었다.(많이 과장된 표현이다.)


주말에 김 선배에게 연락을 하니 월요일 오후에 종로서로 출근하라고 했다. 그리고 월요일, 조금 일찍 종로서 앞에 도착했다. 직전에 종로서를 다니던 막내 조 기자에게 임시청사로 옮겨 내부로 들어가기 힘들 것이라고 전달받았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해 보려 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1층에 위치한 민원실, 형사팀 외에는 인솔자가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동기에게 전달받은 비상 연락망과 내선을 계속 돌려봤지만 을지연습을 앞두고 있던 터라 선뜻 만나주겠다는 경찰이 없었다.


결국 두 시간 동안 한 명을 만나고 보고를 올렸다. 김 선배는 별다른 지적이 없었다. 그저 본서가 안되면 지파도 돌라는 말만 남기고 다시 두 시간 뒤 보고를 하라고 했다. 혜북라인에서 본서 집착남에게 길들여진 덕에 지파를 돌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나였다.


다행히 다음 보고는 풍부하게 올릴 수 있었다. 운 좋게 많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구나 싶었는데 김 선배는 갑자기 필사를 시켰다. 사건 기사 3개를 골라 두 번씩 필사를 하라고 했다. 갑자기 중학교 시절 깜지를 쓰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날부터 입봉이 가능했기 때문에 기사 훈련을 시키려 지시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시켰을 수도 있다...


김 선배는 밥시간도 여유 있게 줬다. 이상하리 만큼 특별한 지적도 갈굼도 없었다. 수습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정치부로 가기 전까지 김 선배는 사건팀에서만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내다 보니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으면 방목하는 자유방임주의 스타일이었다. 물론 후배를 챙길 때는 살뜰히 챙겼다. 나를 입봉 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갖은 노력을 해주기도 했다.


이날은 종로서 방호원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노크맨답게 약속을 잡고 올라가 서장실까지 직행했었다. 을지훈련 때문에 민감한데 수습기자가 서장실을 습격하니 곧바로 방호원님께 출입통제를 철저히 해달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었다. 괜히 나 때문에 방호원님께서 싫은 소리를 들으신 것 같아 사과를 드렸다. 나중에는 방호원님께서 종로서에 오는 기자들 중 가장 열심히 한다며 좋아해 주셔서 친분을 쌓기도 했었다.


종로서 마와리 1일 차를 마치니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었다. 임시청사 구조 그리고 일주일 정도 남은 을지훈련 탓에 마와리 돌기가 여간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바로 입봉 하기 위해 쟁여둔 사건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입봉을 시켜주지 않더라도 인지한 사건을 보고하면 연습 삼아 cc를 따러 보내는 등 마와리 대신 취재를 지시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을지훈련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혜북라인에서 친해진 형님께 사건 하나를 받았다. 당장 다음날부터 마와리를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https://blog.naver.com/chicpark_/22329641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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