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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T Jun 15. 2024

2023년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린 세상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여러분들은 연중행사가 있나요?

극강의 E 성향분들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생일주간'을 넘어 한 달간 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름이면 일주일 휴가를 내어 산속에 틀어박혀 '책 30권 읽기' 같은 과업을 이루기도 할 겁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매년 연말 연초 일본 도쿄에서 지내며 새해 사업 구상을 해 온 것도 유명합니다.


저는 20대 시절 두 가지 연중행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 참여하기. 영화에 대한 로망이 컸던 시절,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보고 또 영화인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특히 심야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5시간가량을 밤새서 보는 심야 상영 프로그램은 필수코스였습니다. 상영 시간이 길다 보니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고, 그때면 맥주나 핫도그 같은 간식도 주면서 퀴즈 맞히기 프로그램도 진행해 즐거웠던 기억이 크네요. 마지막에 가서는 졸음에 못 이기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동 틀 무렵 영화관을 나오면 뿌듯함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작년 이 영화제가 종료됐단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어떠 한 시대가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입니다.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주류에 속하지 않는 독립 연극, 공연이 펼쳐지는 행사입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두 해 동안 이곳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거기에서 이뤄진 젊은 예술인들과 학생들과의 만남 또한 즐거웠습니다. 공연 하나하나가 꼭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젊은 예술인들의 아이디어가 신선했고, 또 전문 연극인들이 아닌 직장인 등으로 이뤄진 예술단 사람들도 숨은 노력 끝에 자신의 무대를 완성한다는 점이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제가 요즘 새로 만들려고 하는 연중행사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읽기입니다. 독서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경제, 마케팅, 역사, 심리학 등 논픽션 위주로 읽고 문학 작품은 그리 읽지 않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휴가 때라도 문학 작품을 읽어보자 해서 서점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손에 들게 됩니다. 이왕이면 지금 현재의 현실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시선을 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수적이지만 책이 비교적 가볍고 그해 출간된 작품집은 일부러 저렴하게 판매해서(2024년도 작품집 7700원), 구매하기도 여행 시 갖고 다니기도 부담이 없고요.


이번 휴가에 함께 한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김멜라 작가의 '이응이응' △공현진 작가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김기태 작가의 '보편 교양' △김남숙 작가의 '파주' △김지연 작가의 '반려빚' △성혜나 작가의 '혼모노' △전지영 작가의 '언캐니 밸리' 등 7개 작품을 수록했습니다. 2023년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올해 1월 선정한 것이니 이 작품들은 2023년의 한국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봐야겠지요.


문학 작품을 리뷰하면서 그 스토리를 단순 요약하거나 책에 표기된 해설을 옮겨 적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겁니다. 작품에서 느끼는 바는 독자마다 다를 테니까요. 이번 글에서는 유독 눈에 띄었던 몇 개 작품에 대한 인상을 적어보려 합니다.


무속이라는 소재를 다룬 성혜나 작가의 '혼모노'가 가장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모시던 장수할멈이 다른 20대 초반 여성 신애기(갓 신내림을 받은 무당)에게로 옮겨간, 신기가 사라진(퇴물이 된) 50대 남성 무당의 곤혹과 투지를 그렸습니다. 신기가 사라졌음에도 이를 숨기며 오랜 단골 고객에게 거액의 굿판 건을 따내고 유튜브로 신 내림을 받은 척하는 방법을 배우는 무당의 모습은 꼭 희극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해설에서 제시되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무엇인가'라는 이 책의 주제 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지영 작가의 '언캐니 밸리'는 제가 다른 단편소설에서 느끼지 못했던 스릴러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가상의 언덕배기 부촌 '청한동(대부분 사람들이 성북동을 떠올릴듯한)'을 오가는 여성 손님 장신영(또는 김승민), 그리고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왜소증의 택시기사인 나, 그리고 장신영이 찾는 의문의 대저택과 그곳 주인 노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공간적으로 윗마을-아랫마을, 부촌-저지대, 노부부-젊은 여성 등의 구도가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김남숙 작가의 '파주'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군대 시절 괴롭힌 후임이 3년 만에 찾아와 '괴롭힘의 대가로 1년간 한 달에 100만 원씩 달라'라고 하며 펼쳐지는 '시시한 복수극'을 담습니다. 가해자인 남자친구가 끝끝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덜 줄 수 있을까만 궁리하고, 피해자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를 가해자-피해자의 시선에서 담지 않고 '가해자의 여자친구'의 눈으로 그려내 미묘함이 남습니다.


이 작품들을 읽으며 단편영화로 영상화된 장면들을 상상했습니다. 어떤 색감과 어떤 톤일지, 어떤 음향 효과가 있을지 그려지는 것은 작가들의 표현이 그만큼 살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지 않은 작가들이 그해 발표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한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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