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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by 강아지똥

냉장고 안쪽 구석에 오징어 한 마리가 통에 담겨 있다. 투명한 통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오징어는 이미 신선함을 잊은 지 오래다. 볼 때마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그 즉시 버리지 못하고 미룬다. 뒤돌아 잊어버린다. 삼 주가 지났다. 오늘은, 꼭 버려야 한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오징어의 상태와 냄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잠시 굳어진다. 통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한다. 냉장고에서 ‘띠링띠링’소리가 들린다. 소리에 깜짝 놀라 그냥 문을 닫아 버린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냉장고 앞에 있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본다.


“어머. 너는 엄마를 안 닮았구나. 아빠만 닮았나 보네. ”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사람들의 말에 엄마는 “그러니까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어떨 때는 엄마가 먼저 “저랑 안 닮았지요?”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아 피부가 좋았다. 또 여성스러운 외모에 깔끔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나는 아빠를 닮아 긴 얼굴에 피부도 좋지 않았다. 거기다 말도 많고 덤벙거리길 잘했다. 엄마를 닮지 않은 내가 부끄러웠다. 엄마는 항상 내가 야무지지 못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닦고, 치우고, 꾸민다.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엄마의 부지런함이 불편했다.


어른이 된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나 어릴 때 몇몇 아이들이 나 못생겼다고 놀렸었어. 남자아이들이었는데, 내가 지나가면 ‘파주댁’, ‘주걱턱’이라고 불렀어.”

“그래? 엄마는 몰랐네. 네가 어디가 어때서.”

“지금은 인상이 많이 좋아진 거지. 그때는……, 하여튼 그랬다고.”

“아니 대학 다녔지. 부모가 키워줬지. 그럼 됐지.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니?”

“…….”

“대학 나온 너도 그렇다는데, 엄마는 어땠겠어? 부모 복도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고……. 대학만 보내면 다 되는 줄 알았지. ”

엄마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 마음을 열어 놓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외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그 오징어가 보인다. 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갖 안 좋은 감정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오징어로 바로 요리를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버리는 게 생기면 어쩌자는 거야. 살림도 엉망이지, 일도 엉망이지. 요새 애들은 지들 맘대로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있기는 한 건가? 지금도 봐. 생각만 하지 행동을 못 하잖아. 말만 잘하고 제대로 하는 건 없잖아. 예전이랑 달라진 게 뭐야.’

‘역시 난…….’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이 묵혀두었던 불편한 감정을 소환한다.


전화기가 울린다. 남편이다.

“응.”

“그냥 했어. 뭐해?”

“오징어, 냉장고에 넣어 놓고 까먹은 오징어 말이야. 버려야 하는데….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버려. 버리면 되지 뭘 그래. 그리고 ‘내가 까먹었네’ 하면 되지.”

“그러니까. 그런데…….”

“음…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우리 딸이 당신같이 버려야 하는 걸 못 버리고 있어.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말해줄래?”

전화를 끊고 나니 신기하게도 판도라의 상자가 닫힌다.


나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연다. 현관문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고, 플라스틱 통을 연다.

그리고 오징어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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