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논두렁을 걸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엄마는 예뻤다. 엄마가 사 온 간단코를 입은 아이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이는 엄마의 빠른 걸음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엄마는 키가 크구나’ 아이는 자꾸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들었고, 그때마다 몸이 기우뚱거렸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외할아버지는 무척 무서웠다 담뱃대를 높이 들고 소리를 쳤다. 외할머니는 가끔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를 업고 집을 나섰다. 아이는 그 뒤를 따랐다. 집이 안 보이는 곳에 다다르면 그녀는 남자아이를 내려놓고 아이를 업어주었다. 엄마를 따라 나설 때 등 뒤로 외할아버지의 큰 목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길고 긴 논두렁을 지나 차를 탔다. 차에서 내려 시골길을 걷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넜다. 낙동강 옆에는 띄엄띄엄 집들이 있었다. 집들은 서로 한참을 떨어져 있었는데, 그중 가운데 유난히 낡고 허름한 집이 보였다. 작은엄마는 연신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마당 한쪽에 서 있었는데, 아이보다 큰 남자아이와 아이보다 작은 여자아이가 방 안에서 아이를 흘끔거렸다.
아이는 그곳에서 나와 다시 논두렁을 걸었다. 걷다가 다시 버스를 탔고, 내려서 또 걸었다. 도착한 집은 무척 컸는데,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큰집이라고 불렀던 그곳에서 엄마와 아이는 이틀을 잤다. 그리고 큰집에서 나와 다시 논두렁을 걸었다. 막내 작은집은 방앗간 옆에 마당이 넓은 보루끄 집이었다. 아이는 막내 작은 아빠와 작은엄마의 차가운 눈이 무서웠다. 결국 엄마는 처음 갔던 그 허름한 낡은 집으로 아이를 다시 데려갔다.
어른들은 없었다. 아이를 흘끔거렸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엄마는 돈을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갔다. 아이의 엄마는 버선 속에서 돈을 꺼내 아이의 손에 꽉 쥐어 주었다.
“숙아,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이쁜 옷 사가지고 올게”
낙동강 작은 집은 시래기죽을 끓여 먹었다. 쌀보다 우거지가 대부분이었는데, 그것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 이불도 없었다. 오줌을 싸면 옷을 말리는 동안 추운 밖에 옷을 벗고 서 있기도 했다. 밥을 먹으러 가면 아이의 밥은 없었다. 밥상에 있던 아이의 밥은 쪽문 넘어 부엌으로 옮겨져 있다. 아이는 신발을 신고 방을 나와 부엌으로 갔다. 부엌으로 가면 다시 밥은 방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십 대의 나는 엄마가 아직 일곱 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아직도 논두렁을 걷고 있었다. 끝도 없이 길고 긴 논두렁이었다. 이상하게 그 뒤로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엄마는 사라지고 작은 아이만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