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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

by 강아지똥

연달아 두 번이나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몇 시간 뒤,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의자 위에서 넘어졌고, 움직일 수 없어 119를 타고 병원에 갔다는 것이다. 엄마는 척추 골절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서울로 올라가 엄마의 손발이 되었다. 엄마의 기분을 맞추며 며칠을 보냈다. 놀람과 자책이 섞여 엄마의 몸과 마음은 예민했다.


엄마는 허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베개의 더러움과 시트의 지저분함을 지적했다. 잠깐 휴지통에 휴지를 버린 내게 손을 씻으라고 말한다. 옆 침대 환자의 숨소리와 말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허리가 아픈 상황인데도 샤워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엄마의 요구대로 엄마를 씻겼다. 나는 가능한 입을 닫고, 몸을 움직였다. 엄마 옆에서 철저하게 나를 지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행히 엄마의 회복은 빨랐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 아이들과 안과를 다녀왔다. 시력이 나쁜 아이들은 눈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매일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력이 안 좋아져서 안경을 다시 맞추기로 했다. 안경사가 추천해준 안경을 쓴 아이가 우물쭈물한다. 물건을 살 때 제대로 표현을 안 해서 괜찮은 줄 알고 샀다가 사용을 안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기에, 나는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아이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중간한 대답을 한다. 안경사는 학생답다며 연신 아이를 보며 말을 했다. 아이는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도 나쁘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아이가 망설이자 안경사가 재촉했고 나는 아이에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이야기하라고 다그쳤다. 망설이는 아이를 보며 안경사는 괜찮다며 엄마에게 묻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다. 안경을 사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자 나는 폭풍 같은 말들이 쏟아냈다.

“알겠다고…….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화를 내니까……. 그리고 아까 나도 잘 모르겠어서……, 엄마한테 물어본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울먹거리는 아이의 말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엄마 앞에서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엄마는……, 화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니? 엄마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그런데…….”

갑자기 울컥 목이 메어왔다.

“이건 엄마 입장인 거고. 너는 네 입장이 있는 거니까……. 어른에게 의견 표시하는 게 어렵겠지. 그렇게 하면 왠지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고……. 상황 파악 못 하고 이해력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까 겁나기도 하고……. 그래도……, 말을 해야 하는 거야! 설사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더라도 말이야. 너는 너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거야. 그건 내가 이래서 그런 거야라고 말을 해야 해. ”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생길 때, 그래도 난 이렇게 해야겠어라고 말을 해야 해. 결과를 겁내지 말고 선택도 하고 결정도 해야 해. 엄마가 이렇게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감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너는 너 자신에게 솔직하게 해야 해. 자꾸 눈치 보고 숨기면 안 돼. 그러면 네 안에 또 다른 네가 생기고, 그러면 마음이 힘든 거야. 혹시 네 감정이나 생각을 잘 모를 때가 있어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해야 해. 기다려 달라고 말해야 해.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해. 너를 보호해야 해!”

말들이 터져 나왔다. 울먹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나는, 남편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만 말하자. 네가 엄마 마음까지 다 헤아릴 필요는 없는 거야. 여튼 아빠랑 안경 다시 맞추고 와. 당신이 같이 가서 시간을 주고 선택하게 해줘.”


며칠 뒤 다시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갔다. 엄마는 혼자서 보호대를 착용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 정말 다행이야. 오히려 조심해서 다니라고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몰라. 아 참, 언제였지. 예전에 엄마 강원도에 있을 때 교통사고 났었잖아. 그때도 내가 서울에서 내려가서 병원에 며칠 있었던 것 같아.”

“아! 그때. 네가 유리구두 사줬을 때.”

“유리구두?”

“그때 네가 다 나으면 신으라고 반짝반짝한 구두 사다 줬잖아. 그리고 그랬잖아. 교통사고 났는데 엄마가 직접 전화할 수 있는 상태여서 다행이라고. 감사하다고.”

“아……. 그랬었구나. 내가.”

그 당시 저녁을 먹으러 병원에서 나온 나는 병원 근처를 무작정 걸었었다. 그날도 이상하게 서러워서 눈물이 났었다. 엄마가 아픈데 눈물이 나는 내가 이상하고 싫었다.

‘그때 그랬었는데……, 그날 나는 예쁜 구두를 보고 엄마를 생각했구나. 그리고 그걸 엄마는 유리구두라고 생각하는구나.’

“네가 지난번에 옆에 있어 줘서 엄마가 빨리 회복한 거야. 고마워.”

어색해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마음을 건드린다.


“엄마. 있잖아.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 표정이나 행동에 신경이 쓰였어. 유별나게 예민하게 느껴지고 생각도 복잡해지고, 그러면 사람들이 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랬었어. 그래서……, 좀 힘들었어. 그런데 요즘에 내가 글 쓰면서 알게 된 건데 말이야. 그냥 내가 좀 더듬이가 많아서 그런 거였더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엄마도 나처럼 유별나게 느껴지고 보이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았던 거야. 보이고 자꾸 걸리니까 말을 하는 건데 말이야. 그때의 나는 안 보이는 것들이니까, 그게 이해가 잘 안 돼서 힘들었었어. 엄마도 터져 나왔을 텐데 말이야…….”


병원에서 나온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경주마처럼 한 곳만 바라보던,

내 감정과 내 마음만 보였던 나는,

이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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