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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by 강아지똥

저녁을 먹고 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엄마 문구점 갈 일 있는데, 같이 갈래? 너 뭐 살 거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반응을 기다리다 다시 한번 방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 아이가 대답한다.

“그럼 나도 같이 갈래. 올리브영에서 살 거 있어. 필요한 거 있어. ”

“그래. 그러자”

20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7층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아이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살짝 웃었다. 아파트를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울린다. 엄마였다.


엄마의 긴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중간 짧은 대답을 이어갔다. 엄마의 전화는 우리가 문구점에 도착했을 때까지, 내가 물건을 사고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끊고 싶었지만, 끊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듣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너 뭐 하는데? 바빠? ”

지금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잠깐 밖에……,”

“알았어. 끊어.”

평소처럼 엄마를 다 받아냈어야 했다. 나의 모든 것들이 미모사처럼 오므라든다.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혼자 있고 싶어. 들키고 싶지 않아. '

“빨리 사고 가자. 너 뭐 필요하다고?”

굳은 표정에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은 아이가 더듬더듬 말한다.

“아니……,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아까는 필요하다며?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도 모르고 사려고 한 거야? ”

이런 식의 대화가 몇 번 오간 후, 결국 매장 점원이 추천한 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다. 불편한 감정은 급발진을 불러온다. 급발진 후 돌아오는 것은 ‘찌질함’ 뿐이다.


낮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가방도 벗지 않은 채 엎드려 울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나의 물음에 아이는 잘 잡히지 않는 주파수의 라디오 소리처럼 끊어지듯 말했다. 나는 몇 개의 단어로 상황을 유추한다.

“자세히 말을 해야 알지. 이번엔 엄마가 말 안 하고 잘 들어줄게.”

아이는 또 더듬더듬 몇 개의 단어만 던진다. 아무 말 안 하고 들어준다는 약속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진다. 퍼즐이 맞추어지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아이는 입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의 이야기와 감정은 받아내고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이야기와 감정은 받아내고 참아지지가 않는다. 엄마를 닮은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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