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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by 강아지똥

임신한 상태로 전주에 내려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기에 아이가 태어나니 좋았다. 말할 상대가 있었고, 무엇보다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어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아이는 말이 빠르고 잘 웃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둘째가 생겼다.


아이를 재워야 하는 저녁이 되면 예민해졌다. 원래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불면증이 심했던 나를 닮았나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그날도 아이와 함께 누웠다. 자장가를 부르며 토닥인다. 일어나 아이의 팔다리를 주무른다. 지친 나는 다시 아이 옆에 눕는다. 아이의 손이 자꾸 옷 사이를 파고든다. 더듬더듬 가슴을 찾는다. 가슴에 닿는 아이의 손이 거슬린다. 아이가 젖꼭지라도 만지면 등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는 칭얼거리며 자꾸 가슴을 건드린다. 계속 이어지는 아이의 손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건드리지 마. 제발’ 머릿속에 쏟아지는 말들을 꿀꺽 삼킨다.


아이에게 천천히 설명한다. 불러온 배에 아이의 손을 대고, 가슴을 만지면 아가가 아플 수 있다고 그러니 엄마를 만지지 말라고. 다시 아이를 토닥인다. 그리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이는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 잠이 들려고 할 때쯤 어김없이 내 가슴을 더듬는다.

“하지 말라고 했지. 제발, 제발 그냥 좀 자. 왜 이렇게 못 자는 거니. 엄마가 말했지. 하지 말라고! ”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내 손에 장갑 끼워줘. 손이 내 맘대로 안돼.”


눈물이 쏟아졌다. 미안하다는 내 말에 아이는 다시 내 품을 파고들었다. 다시 아이를 토닥인다. 그러면서도 다시 가슴에 손이 닿을까 신경이 쓰였다. ‘나는 엄마니까, 잠이 깊이 들 때까지만이라도, 참아야 해’ 그러나 막상 가슴에 손이 닿으면 소름이 돋았다. 불쾌했다. 가슴이 내어 지지가 않았다. 생각대로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잊고 있었던 불안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단순히 둘째를 임신한 상태여서, 지치고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걷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가 버거웠다.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를 보면 자꾸만 억울하고 화가 났다. 아이는 내가 꼭꼭 숨겨놓았던 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엄마의 가슴을 쉽게 만질 수 있었다고 했다. 좀 커서도 만졌다면서, 그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항상 남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우리 **이 하면서 얼굴을 쓰다듬는다. 나도 나의 가슴을 아이에게 내주고 싶다. 그러나 ‘내주고 싶다’와 행동으로 내어주는 것은 달랐다. 어색하고 불쾌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꾸 눈물이 났다.


육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긍정적이어야 아이에게도 긍정적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줄 거야’,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 권리’,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는 방법’ 등을 적은 포스트잇을 벽에 잔뜩 붙였다. 그런데 아무리 읽고 듣고 써도 어려웠다.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감정들에 무너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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