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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by 강아지똥

커다란 양지 한 덩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작게 잘려진 국거리용 고기가 아니다.

커다란 양지 한 덩이를 물에 넣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 거품을 걷어낸다. 그러길 여러 번 한 후 다시 가스 불을 줄이고 기다린다. 불린 미역을 넣고 마늘을 넣고 끓인 다음 마지막에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가스 불을 끈다. 내가 본 시어머니의 미역국 레시피이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번지. 주소는 있지만, 주소로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산 아래 손수 지으신 조립식 주택은 길에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곳, 그곳에 시댁이 있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이십 분,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이십 분 정도 걸어야 갈 수 있었다. 한 시간에 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옆집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거리에 있어서, 시골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시부모님은 남편이 어렸을 때 정육점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님은 소 시장을 다니신다며 전국을 돌아다니셨다. 정육점과 그곳에 딸린 집에서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남편은 어릴 때 거의 혼자 놀았다고 했다. 정육점에 손님이 오면 가라고 외치고, 엄마에게는 늘 들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삼겹살을 먹어보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고도 했다. 삼겹살은 많이 팔리기 때문에 먹지 못했고, 늘 소고기만 먹었다고, 특히 안심은 거의 팔리지 않아 거의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1년 정도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나는 제사가 있어서 혼자서 시댁에 가게 되었다. 제사를 늦은 저녁에 지냈기에 시댁에서 자고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다. 새벽에 달그락 소리에 눈을 떴다. 베개 밑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네 시였다. 시어머니가 일어나서 움직이신다. 일어나서 나가려다가 혹시 불편해하실까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방문 너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을 잘 수도 더 누워 있을 수도 없어서 다섯 시쯤 일어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잘 잤니? 며칠 있으면 네 생일이길래 미역국 끓였다. 얼른 먹고 회사 갈 준비해라. 나는 이제 나가야 해서, 혼자 먹어도 괜찮지? 바쁜데 치우지 말고 그냥 두고 가. 알겠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과 접시에 가지런히 담긴 반찬들. 그릇들은 낡았지만 정갈했다. 그리고 미역국이 있었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밥상에 앉았다. 묵직하고 달큰한 국물은 입안을 맴돌고 부드럽게 목구멍을 지나 배까지 내려갔다. 미역국이 아니라 진한 고깃국이었다. 어머니의 시간과 정성이 뜨겁게 내 몸을 지나 내려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는 나를 지나 바쁘게 옷을 챙겨 입으셨다. 다섯 시 반쯤 지나가는 첫차를 타야 직장에 늦지 않으신다. '전날 제사를 마치고 늦게 주무셨는데……, 엄마도 까먹고 지나가는 내 생일인데.' 나는 미역국을 먹으며 자꾸만 목이 메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남편이 부러웠다. 엄마가 된 나는 한동안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일부러 커다란 양지 덩어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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