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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by 강아지똥

너와 두 번째로 만나던 날도 이런 날씨였다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은 살짝 차갑지만 시원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걷기에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렸다. 인사동 골목이 보일 때쯤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모서리를 맞추어 두 번 접혀 있었다. 약도가 그려진 종이를 핀 후 주변을 돌아보며 큰 건물과 상점들을 찾았다. 집에서 또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지도 속 길을 더듬고 상상했다. 약속 장소는 내 예상과 달리 역에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리다 너를 발견했다. 일마레 레스토랑. 청바지에 하얀 남방을 입은 너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테이블마다 하얀 테이블보가 덮여있었다. 테이블보 위에는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작은 초가 있었다. 촛불은 작고 예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일마레가 이탈리어로 바다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나는 일마레, 일마레하고 두어 번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이 가게는 파스타 위에 반죽으로 뚜껑을 덮어 오븐에 굽는데, 그것 때문에 유명해졌다고도 했다.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너의 입을 바라보았다. 가끔 너의 눈을 쳐다보았는데, 너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일렁이는 촛불로 시선을 옮겼다.


지난달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저녁이었고 술자리였다. 주로 내가 이야기했고 너는 들었다. 나는 길거리를 뛰었고 너도 나를 따라 뛰었다. 환한 낮에 만난 너는 달랐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네가 시작했다. 나에게 질문을 하면 나는 짧게 대답한 후 다시 너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테이블보 아래에서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컵은 와인 잔처럼 생겼는데, 조금 더 작았다. 나는 목이 말랐지만 얇은 손잡이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에서 나왔을 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너는 이어폰 한쪽을 나에게 주었고 피아노 연주를 틀었다. 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인사동에서 종묘로, 종묘에서 다시 동대문까지 걸었다.


마음이 간지러워서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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