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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by 강아지똥

경희대 근처 ‘팡세’의 손님들은 대부분 여대생이었다. 그녀들은 담배를 피웠고 재떨이에 침을 뱉었다. 사장은 수시로 재떨이를 바꿔 주라고 했다. 사장은 한시도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손님이 없으면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환풍기를 닦았고, 사장이 커피를 타고 건네는 작은 티스푼을 깨끗이 씻어야 했다. 사장은 자주 내 화장과 외모를 지적했다. 자주,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2주가 넘도록 가게 문을 나설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채 가게를 그만두었고, 사장은 나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석계역 근처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여자 사장님은 항상 희미하게 웃었고, 느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부부는 가끔 마주 앉아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나는 할 일이 없을 땐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테이블을 치우며 손님이 놓고 간 담배와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후 서둘러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 놀이터를 찾았다. 놀이터는 한적했지만 나는 그네에 앉아 주변이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껌껌해진 놀이터에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비친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로 걸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한쪽 호주머니에는 담배와 라이터가, 한쪽 호주머니에는 첫 월급이 있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라이터는 생각처럼 잘 켜지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라이터가 켜졌고 나는 불이 꺼질까 싶어 얼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라이터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호주머니 속에서 월급봉투가 만져졌다. 혹시, 잘못해서 주머니에서 봉투가 빠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몰려왔다. 한 손으로는 봉투와 호주머니를 함께 꽉 잡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잡았다. 담배를 잡은 손이 어색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어 번 담배를 빨아 보았다. ‘컥’하고 숨이 막혀왔다.

‘쳇. 별것 아니잖아. 이게 뭐라고.’


나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꾹꾹 밟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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