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생각하다, 꿈에서 만나다
인복이 많은 편이라 그동안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그 중 내 인생 변곡점에서 만난 한분이 최근 자주 떠오른다. 아마도 그분이 걷고 있을 길이 얼마나 아픈 가시밭길일지, 걱정과 염려의 반응인 것 같다.
그분과는 걸어온 인생 자체가 달랐다. 나이차는 10년 채 안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세대지만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동경의 대상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에서 모두 칭찬일색이었고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 1순위로 거론이 되곤 했다. 아주 잘 맞을거라며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나를 그분에게 추천했고 떠밀리듯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함께 일하면서 감탄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섬세하고 꼼꼼한데다가 매우 기초적인 부분부터 철저히 챙겼다는 점이었다. 어디선가 주어들은 말로 뜬구름 잡듯 말하는 내게 "그건 왜 일까요?" "구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라며 더 깊이 사고하지 못함을 꼬집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물론 다음 보고가 두렵기까지 했지만 혹독한 훈련 덕에 서서히 나는 야무지게 변해갔다. 더 많이 자료를 찾았고, 더 깊이 있게 사고했으며 틀린 지점도 집어내는 데에 익숙해졌다. 오늘날 일하는 방식의 5할은 그분께 배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인간미가 없다고 평했으나 나는 다르게 평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이었다. 인간미가 없다고 평한 이들은 당시 통용되던 술자리 문화 등 조직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아 불편을 호소하는 것에 불과했다. 잘 하면 잘 한다 뜨겁게 칭찬했고 못 하면 못 한다고 요목조목 짚었다. 꼼꼼하게 메모로 피드백 했는데 그 메모용지에 어떻게 적혔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보고한 내용이 얼마하 허술한지를 알 수있는 척도가 되었다. 메모에는 굿이나 좋다와 같은 평가도 붙어 있었고 그 말에 다들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너무 빈틈없어 보여 인간미가 없다고 한걸까. 때로는 아니어도 눈감고 넘어가주는 맛이 없어서였을까.
한번은 그분이 나를 조용히 불러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초반에 뭘 잘 몰라 급하게 이리저리 사람들 잘 알아보지 않고 팀을 꾸렸는데..."
후회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가르치면서 끌고가는 데 한계가 왔다는 말이었을 텐데 나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마냥 불쾌해했다.
"죄송합니다. 다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사직을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갑자기 그동안 내가 남들에게 쏟아낸 칭찬들도 모두 거둬들이고 싶어졌다. 냉랭해졌고 어떻게든 빨리 인연을 끝내고 싶었지만 별다른 길은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지금 나는 그분만큼의 위치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와있다. 그분처럼 메모에 꼼꼼히 피드백하지도, 칭찬과 지적을 명확하게 잘 하지도 못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깨닫는 점이 있다. 가르치면서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 가르치면 스폰지처럼 빨아들이지는 못할망정 똑같은 일로 또다시 피드백을 해야 할때,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되는지를 말이다.
웃으면서 건네는 말 속에는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고,
요목조목 지적하는 말속에도 역시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
건강은 하신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잘 지내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으니
꿈속에서라도 만나게 해주셨던 것일까. 여위었지만 여전하셨고, 깊은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나를 향해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오라며 10여년전 그 사무공간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요새 고민을 말하는 나에게 내가 현안 파악이 안되어서 나중에 파악하고 말씀드리겠노라고 하니 요목조목 또 설명을 한다. 당시 일했던 동료들이 등장하며 대화는 중단되었지만, 꿈을 깨어 생각한다.
잘 지내시라고.
당신처럼 저도 사랑을 실천하는 선배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