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땐 그랬었다 말할 수 있을런지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지금
무엇이 중요하게끔 될 걸까...
- 김동률 청춘 가사 중-
새벽 출근길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이 노래에 울컥했던 적이 있다.
바로 노래를 찾아 다시 듣고 또 다시 듣고...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한때 우리도 청춘이었고, 청춘의 시절을 지나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 때까지 그 시절은 그대로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정신차려 보니 저멀리 청춘은 떠나가고, 홀연 떠나버린 사랑처럼
만나지도 만날 수도 없는 아득한 옛 존재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그때가 좋았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떠한지를 깨닫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을 그 말에 마치 어른이 된 듯 착각을 했던 건 아닌지. 해서 그 말은 이제 우리도 철이 들었다고 자부하던 오만은 아니었던지.
불현듯 청춘의 무모함이나 부질없는 걱정과 고민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라는,
무작정 새벽에 기차를 타고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일도,
동터오는 새벽 길거리를 방황하는 일도,
우르르 몰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일도,
한번 해보자 말뿐이지 영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게 지금의 '나'라를 사실을 깨닫는다.
春
언젠가부터 청춘을 함께 한 친구들과의 만남이 뜸해졌다.
처음에는 수개월에 한 번, 그 다음에는 1년에 한 두 번, 그 다음에는 몇 년에 한번 볼까 말까.
기억이 맞다면 그 친구들을 만난건 2017년이었으니, 6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그래도 소식을 간간이 접해서인지,
뜨겁던 시절, 서로 알 일, 모를 일 다 겪으며 지내온 시절이 있어선지,
멀게만 느껴지지 않지만, 선뜻 그들을 만나러 갈 마음이 일지는 않는다.
한국을 떠났던 누군가 잠시 귀국했다는 소식에, 서로들 약속을 잡는데 나는 뒤늦게 대화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가겠다 말겠다 심지어 귀국한 친구에게 어서 와라는 환영의 메시지 한줄 남기지 않고 있다.
왜 일까.
딱히 연유가 있을 턱이 없고 연유가 있다면 그동안 나의 일상이 달라졌다는 점 정도.
사람들과 어울렸던 일상이 어울리지 않는 일상으로 바뀌었고,
주로 일로 관계가 있거나, 아이와 관계가 있거나 하는 사람 외에는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애써 오래전 관계를 소환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삶이 그들과의 관계속에 이야기거리가 되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일까.
내가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또 무슨 상황이건 간에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준다는 믿음이 사라지게 됐기 때문일까.
원래 천성이 지독한 개인주의자인데다가,
할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없는 상태이니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네가 그런 삶을 살지 몰랐어."
그런 삶이 뭘까... 6년전 그 모임에서
적어도 너라면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상황에 씁쓸했던 나는 -나는 그때 그냥 고생했어라는 한마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
여전히 세상이 부족하다 한탄만 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세상은 많이 변화해야 하지만, 그 변화는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들은 변함없이 남들이 변화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겨 꺼려졌기 때문일까.
하여간 직접 만나 생각을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가면,
언젠가 그들을 만나 그때 그랬었다 말할 순 있을런지...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