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나에게
여러 번의 소개팅을 하다 보면 현타가 온다.
왜 괜찮은 남자가 없는 걸까.
대체 내 인연이 있기는 한 걸까.
언제 나타나는 걸까.
나의 진짜 인연이 늦어질수록 그 이유를 계속 소개팅남에게서 찾았다.
성격이 어떻고, 직장이 어떻고, 티키타카가 어떻다는 둥
어느 순간 주변의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내 인연을 찾겠노라며 조급해하던 사회적 결혼 압박 시기가 지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절대 다 내려놓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드릉-드릉-!
다만, 사회가 정해놓은 과업 달성 시기에
내 인생의 과업을 짜 맞추려 하지 않는 여유와 통찰이 생기면서
진짜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망의 Top 1은 여러 소개팅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함께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쓴 편지다.
소개팅에 실패할 때마다 인연 운이 없다며 상황을 탓했다.
물론 아직 내 인연의 때가 오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소개팅 후일담을 친구랑 얘기하다가 나는 문득 소개팅에서 내가 반복적으로 하는 실수의 패턴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차!
머리를 띵 한 대 맞은 기분!
나는 만나기도 전부터 주선자를 통해 얻은 대략적 정보들을 나의 이상형 필터에 끼워 맞춰 김칫국을 드링킹 하기 시작하는 요상한 습관이 있었다.
아주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의 바람과 희망을 담아 소개팅남이 마치 내가 찾던 이상적인 배우자상인 것처럼 착각하고
내가 만들어놓은 틀에 상대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스스로 금사빠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패턴은 대략 이러했다.
1. 사전 정보들을 조합하여 나의 이상형 필터에 끼워 맞춘다.
2. 첫 만남에서 이 필터는 계속 On 상태로, ‘이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며 기뻐한다.
3. 애프터를 수락하고 다음 만남 전까지 연락을 이어 나가는데, 대화는 이미 거의 연인으로 발전하기 직전이다.
4. 오늘부터 1일이라는 확신으로 마침내 두 번째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인성이나 태도에 실망감을 느끼게 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대화를 통해 드러나면서 나의 핑크 렌즈는 서서히 벗겨진다.
5. 소개팅남은 이전과는 달라진 감정 기류에 당황해하고, 나는 나의 감정변화를 솔직하고 무례하지 않게 잘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6. 나는 섣부른 자기 확신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며, 앞으로의 소개팅에서는 달라질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
나는 1~6번 패턴의 실수를 몇 차례 반복하였고
이것은 결혼 적령기라는 나의 환경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아닌 척했지만 조급했나 봐.
나의 인연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만 섣부른 판단을 하는 실수를 하고는 했어.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덕분에 소개팅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
어떤 점에서 끌렸는지, 반대로 실망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내가 원하는 배우자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거든.
그리고 처음 만난 상대에게 쉽게 마음이 설렐 수 있지만, 감정을 천천히 조절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지.
앞으로 있을 소개팅에서 내가 거절당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결국 나의 진짜 인연을 만날 것이라 확신해.
항상 응원해!
마지막으로,
나의 소개팅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소개팅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순풍에 돛 단 듯 좋은 인연을 바로 만나는 것도 큰 복이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상대방의 심정을 헤아리거나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저와 소개팅해 줘서 고맙고, 잘되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나는 성장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곧이라 믿는다.
Stay tu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