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 차 트렁크에 작은 가방을 던져 넣는다. 이번 주말은 또 그곳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골 마을.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라디오에선 옛날 노래가 흘러나온다. 창밖으론 어둠이 내리고, 멀리 보이는 불빛들이 반짝인다. 마치 또 다른 별자리 같다.
늦은 밤, 민박집에 도착한다. 주인 할머니가 방을 내어주시며 물으신다. "저녁은 먹었나?" 괜찮다고 하는데도 따뜻한 물에 라면을 끓여주신다.
이 맛에 여기 오는 건가.
아침이 되면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뜬다. 마당에 나가보니 어제 본 적 없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마을 강아지인가 보다. 등을 긁어주니 좋아서
구른다. 이 녀석은 마치 동네의 골목대장 같기도 하다.
시골길을 걷는다. 아스팔트 대신 흙을 밟는 느낌이 좋다. 옥수수 밭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길을 잃어도 모든 게 풍경이 되는 곳.
점심때쯤 마을 식당에 들어선다. 주인 할머니가 물으신다. "혼자 왔나?"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자. “앉으라”라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대답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신다.
왠지 모르게 반찬을 더 많이 담아주시는 것 같다. 반찬 그릇이 넘치도록.
"많이 묵으라." 그 한마디에 코 끝이 찡해진다.
오후엔 마을 뒷산에 오른다. 나무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서울에선 볼 수 없는 풍경. 마을의 지붕들, 그 사이로 난 좁은 길들.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다.
해 질 녘, 마을 어귀 정자에 앉아 노을을 본다. 멀리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맞춰 풀벌레도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런 게 시골의 힙합이지.
밤이 되면 마당에 나가 하늘을 본다. 쏟아질 것 같은 별들. 도시에선 잊고 살았던 풍경이다. 별 하나하나 세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음날아침, 아쉬운 마음으로 짐을 챙긴다. 할머니가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신다. “아침에 삶은 옥수수다, 가는 길에 묵으라." 그 한마디에 그냥 며칠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백미러로 마을을 바라본다. ‘조만간 꼭 다시 와야지. 시간이 없으면 당일치기라도 와야지 ‘라는 마음속 다짐을 한다.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문득문득 그 마을이 생각난다. 복잡한 퇴근길 지하철에서, 소음 가득한 사무실에서. 그럴 때마다 살짝
미소 짓게 된다. 나만의 비밀 세상을 간직한 것처럼.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생각한다. 이번엔 어떤 마을을 만날까. 어떤 할머니를 만날까. 어떤 강아지가 나를 반겨줄까.
그 설렘으로 또 한 주를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