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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정독, 정독 도서관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본다. 맑은 하늘. 오늘은 그곳에 가야겠어.


차를 몰고 안국동으로 향한다. 정독도서관, 내 청춘의 절반을 보낸 곳.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길, 벌써 마음이 설렌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오래된 책 냄새, 나무 냄새, 그리고 뭐랄까... 시간이 멈춘 듯한 냄새.


책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그 모습이 꼭 옛날의 나 같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마치 작은 파도 소리 같아. 그 소리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다.


점심시간, 도서관 앞 골목으로 향한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국숫집이 아직도 있다니. 주인아주머니도 그대로이고, 맛도 그대로다.

그대로인 이곳이 너무 좋다.


오후엔 도서관 정원에 앉아본다. 꽃과 나무들 사이로 옛 건물이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아. 여긴 서울 한복판인데.


해 질 녘, 책을 덮고 나온다. 사실 오늘은 책 한 줄도 못 읽었다. 그래도 좋다. 그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옛날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시절 이곳에서 공부하며 들었던 노래.

도서관을 다녀오는 길이여서 그런지 노래를 들으니 고등학교 시절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난 참 행복했었는데..


며칠 후 난 또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항상 똑같은 길, 똑같은 풍경. 하지만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이번엔 책을 안 가져왔다. 그저 도서관 공기를 마시러 왔을 뿐.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본다. 계절이 바뀌어도 이곳은 변함없다.


차를 마시고 싶어 책을 읽다 말고 근처 찻집을 갔다. 오래된 찻집.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에게도 이곳이 특별할까?


오후, 도서관 계단에 앉아본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난 기억이 있다.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이 옛 추억을 느끼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한 친구를 만나다니,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 한참 동안 도서관의 정원에 앉아 추억을 나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 더 자주 오게 되는 것 같다.


옛 추억에 잠겨 한참의 휴식을 끝내고 해 질 녘, 또다시 집으로 향한다. 오늘도 참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책 냄새가 맡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오는 게 습관이 됐다. 아니다 오래된 책의 냄새에서 나의 추억을 느끼려 오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아침, 출근길. 복잡한 도로 위에서 문득 정독도서관이 그리워진다. 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핸드폰의 다이어리를 열어본다. 다음 달의 주말 어느 날로 일정을 등록한다. 또다시 그곳에 갈 날. 벌써부터 설렌다.


잠들기 전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지 않아도 계속 그곳에 가겠지. 그게 내 삶의 한 부분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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