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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Mar 01. 2022

메리의 집, 얼마든지 누구와 함께 와도 좋아.

  경계 없는 마음만큼이나 그녀의 집 모습도 그러했다.

메리의 집을 떠나던 날 아침, 그간 사용했던 이불과 베갯잇을 세탁해 뒷마당의 빨랫줄에 널고는 빨랫줄을 장대에 끼워 높이 들어 올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빨래가 하늘로 날아갈 듯 펄럭였다. 분명 조금 전까진 맑았는데, 영국 날씨 아니랄까 봐 다시 비가 올 기세였다. 시간이 어느새 열흘 하고도 이틀이나 지났다. 처음 메리를 만난 날, 선뜻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하루 이틀이 아닌 2주 동안이나 머물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고, 그 경계 없는 마음만큼이나 집의 모습도 그러했다.

메리의 집은 숲 속 오솔길 끝에 외따로 놓인 400년 된 농가였다. 잠겨 있지도 않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나무 식탁과 어수선하게 책이 꽂혀 있는 책장, 무쇠로 된 냄비며 프라이팬이 걸려 있는 주방이 바로 보였다. 스콘과 밀크티로 내 허기를 달래준 메리는 내게는 짐을 풀고 쉬고 있으라며,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겨 들고는 말했다.

“마당에 나갈 거예요. 나는 마당 나가는 게 쉬는 거예요.”

마당에서 따온 채소는 그대로 저녁 식탁의 샐러드가 되었다.

메리의 집 마당에는 너른 잔디밭 주변으로 채소가 자라고 있었고, 비닐하우스도 있었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 밭도 있었다. 그곳에서 늙은 오이와 못생긴 당근, 가느다란 레몬그라스와 분홍색 장미꽃을 따 오면 저녁용 샐러드가 만들어졌고 잘 익은 산딸기는 주전부리가 되었다. 메리는 틈만 나면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챙이 널따란 모자에 흙이 가득 묻은 작업복을 입고서 초록 식물들을 애틋하게 돌보곤 했다.


처음 메리를 따라 산딸기를 따러 나갔다가 불쑥불쑥 나타나는 벌레에 기겁했던 나는 그 며칠 사이에 벌레쯤은 손가락으로 툭 쳐낼 만큼 마당에 익숙해졌다. 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메리만 졸졸 따라다니는 날이 많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마당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잊혔다. 어느 날은 정원사로, 어느 날은 농사꾼으로, 매일매일 수백 년간 이어온 농장을 지키는 오너로, 땅에서 하루를 시작해서 땅에서 하루를 끝내는 그녀는 진정한 농부였다.

한가한 주말 아침, 메리는 마당에서 따온 산딸기부터 제일 먼저 챙겼다. 산딸기는 숨어있는 작은 벌레만 골라내면  온종일 새콤 달달한 주전부리가 되었다.

어느 날 메리에게 이 거대한 농장을 가업으로 이어가려면 도시에 있는 아들이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잘 꾸려왔지만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잘 이어가기만 하면 된단다. 마음의 경계가 없는 삶은 생각에서도 경계가 없는 듯했다.


후드득 결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널어놓은 빨래를 급히 걷어 건조기에 돌린 다음 차곡차곡 개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그간 머물렀던 별채 침대에도 잘 썼다는 인사를 하고 매일 그랬듯 현관문은 잠그지 않은 채 집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농장에 들러 메리에게 떠난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언제든 다시 오라고 말했다. 얼마든지 누구와 함께 와도 좋다고 말이다.     

퀵스 농장

Quicke's Traditional Ltd

Home Farm , Newton St Cyres, Exeter, Dev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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