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같은 커드를 모슬린에 감싸기까지

레드레스터 치즈 Red Leicester cheese

by 민희 치즈

푸딩같이 응고된 거대한 커드를 자르는 작업이 시작됐다. 우선 우유의 온도를 40℃까지 데우는데 배트의 파이프에 온수를 흘려 데우기에 우유의 온도가 처음엔 천천히 올라가다가도 순식간에 치솟는 단다. 때문에 우유의 온도를 5분마다 확인하면서 파이프에 온수를 천천히 넣었다. 온도를 높이면서 커드를 자르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자 파이프에서 온수를 전부 빼내 우유의 온도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게 하고 배트 안을 20분간 플라스틱으로 된 기다란 삽으로 휘저었다. 셰빌 아저씨는 몇 분 간격으로 커드를 떠내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나이프로 누르는 일을 반복했다. 시간에 따라 커드의 크기며 상태가 변하는 걸 본다고 했다.


“커드를 눌렀을 때 스프링처럼 올라와야 해. 이건 아직 천천히 올라오지? 조금 더 있으면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져.”

커드가 큰 덩어리 상태일 때는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지만, 잘게 자르고 휘젓는 동안 훼이가 빠져나간다. 순두부처럼 말캉거리던 커드는 작아지는 동시에 단단해지고 탄성이 생기는데 이를 나이프로 눌러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전의 농장들에서는 커드가 작아지면 단단해진다는 결론만 봤는데 이곳처럼 커드의 상태 변화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준 건 처음이었다.


11시 15분, 이제 커드에서 빠져나온 훼이를 배출할 시간이다. 알갱이로 변한 커드가 무거워지면서 배트 바닥으로 가라앉자 파이프를 통해 깊이가 얕은 배트로 옮겨졌고, 동시에 훼이는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갔다. 훼이가 빠져나간 커드는 한층 진한 오렌지색을 띠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배트에 모래성처럼 쌓인 커드를 평평하게 펼친 다음, (체더치즈를 만들 때처럼) 커드에 남아 있는 훼이를 마저 빼내기 위해 네모난 블록으로 만들었다.


작업자들은 배트에 모래성처럼 쌓인 커드를 평평하게 펼친 다음, (체더치즈를 만들 때처럼) 커드에 남아 있는 훼이를 마저 빼내기 위해 네모난 블록으로 만들었다.

이 블록들을 10분 간격으로 계속 뒤집어줬는데, 커드 블록이 뒤집힐 때마다 커드 사이에 고여 있던 훼이가 빠져나갔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곳에서도 퀵스 데어리에서와 같은 체더링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드 레스터와 체더는 색깔만 다를 뿐 비슷한 치즈가 아닌가 싶었는데, 체더치즈와 비슷한 작업은 단지 거기까지였다. 커드 블록을 2단으로 쌓아 고작 네 번만 뒤집었을 뿐, 서로의 무게로 눌러 끝도 없이 훼이를 빼내는 체더링과 같은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이어 커드 블록을 분쇄기에 넣어 잘게 부순 후, 소금을 넣고(우유 양의 2%를 넣는다.) 골고루 뒤섞었다. 그리고 곧바로 커드를 몰드에 넣었다. 소금을 섞은 커드는 크기나 모양이 팝콘과 비슷했다. 체더링을 하지 않은 커드는 스펀지처럼 튀어 오를 정도의 탄력은 없어 그저 푹 떠서 넣기만 하면 몰드에 차곡차곡 잘 채워졌다. 이 몰드는 압축기에 눌려 48시간을 보낸 후 사흘째 되는 날에 꺼내 모슬린 라드 작업을 한다. 그러니 오늘의 일은 여기까지!

커드 블록을 분쇄기에 넣어 잘게 부순 후, 소금을 넣고(우유 양의 2%를 넣는다. 4,500리터의 우유에는 소금 90g을 넣었다) 골고루 뒤섞었다
양동이에 담긴 소금이 치즈에 뿌려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조차 나에게는 아름다웠다.

시간은 이미 오후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 7시부터 벌써 8시간째. 이쯤 되니 겨우 촬영만 하며 따라다닌 나도 서 있는 것조차 힘들 만큼 지쳐버렸다. 하지만 치즈 메이커 크레이그는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지쳐서 넋을 놓고 있었더니 그가 괜찮은지 물었다.


“좀 피곤해서요.” 나도 모르게 피곤하다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런데 크레이그는 진이 다 빠진 얼굴을 하고서도 농담을 했다. “뭐? 피곤해? 우리는 4시 반 알람에 일어나 여기 오는걸! 아,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몰라.”


정말이지, 치즈 만드는 일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농장을 찾아다니며 매번 느끼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노동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다. 작업자들은 저 일을 어떻게 매일 하고 사나 싶을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지칠 시간이 되면 작업장은 되레 더 시끄러워진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음을 터뜨리고, 그 결에 힘을 얻어 다시 작업에 집중하고,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곤 했다.

체더링을 하지 않은 커드는 스펀지처럼 튀어 오를 정도의 탄력은 없어 그저 푹 떠서 넣기만 하면 몰드에 차곡차곡 잘 채워졌다. 이 몰드는 압축기에 눌려 48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레드레스터 치즈를 만드는 작업은 어제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유에 레닛을 부어 응고시키는 동안 작업장 한쪽에서는 이틀 전에 만들어 몰드에 넣어 압축기로 눌러둔 레드레스터 치즈를 꺼내는 새로운 작업이 시작됐다. 몰드에서 꺼낸 치즈는 표면을 다듬어야 한다. 나이프로 치즈 표면을 다듬는 러빙 업 작업을 했던 크롭웰비숍,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뺌으로써 치즈 표면을 살짝 녹여 코팅했던 퀵스 데어리와 달리, 이곳에서는 우선 치즈 표면에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커드부터 매끈하게 잘라낸다. 그다음에는 압력을 균일하게 받지 못해 모양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가장자리가 깨진 치즈는 옆에 따로 쌓아뒀다.

그러고서 의외의 도구가 등장했는데, 바로 다리미였다. 그렇지 않아도 작업장 모퉁이에 왜 전기다리미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치즈에 균열이 생겼거나 깨진 부분을 다리미 열로 녹여 붙이는 기이한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의류의 주름을 펴는 용도 이상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건만, 도구의 의외성에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렇게 모양이 정리된 치즈는 모슬린 라드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퀵스 데어리에서처럼 중탕해 녹이지 않고 응고된 하얀 반고체의 라드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실내 온도에 살짝 녹아 손으로 떠낼 수 있을 만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작업 순서도 퀵스 데어리와는 조금 달랐다. 우선 라드를 한 움큼 떠내 치즈 전면에 손바닥으로 누르듯 골고루 발랐다. 그러고 나서 치즈 윗면과 아랫면에는 둥근 모슬린을 한 장씩, 몸통에는 직사각형 모슬린을 한 장 둘러 작업을 마무리했다. 실온의 라드는 밀가루 풀 같은 되직한 질감이어서 모슬린이 치즈에 착착 감기듯 말끔하게 붙었다.

레드레스터 치즈의 라드 모슬린 작업은, 여러 차례 몰드에 넣었다 빼는 반복 작업을 거치는 체더 치즈의 라드 모슬린 작업보다 많이 간단했다. 이 작업까지 마치면 기초 작업은 끝난 것으로, 레드레스터 치즈는 만들기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숙성 창고로 옮겨졌다.



레드레스터 치즈는 10℃의 저온에 습도는 85%로 유지되는 숙성창고에서 6개월간 머무는데, 창고에 들어간 처음 일주일 동안은 이틀에 한 번씩 치즈를 뒤집어주고 그 후 3주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뒤집어준단다. 그리고 나머지 5개월 동안은 한 달에 한 번씩 뒤집어주는데, 석 달째부터는 치즈 표면에 치즈를 먹고사는 치즈 진드기가 생겨난다. 때문에 이 즈음부터는 솔로 치즈 겉면을 털어내거나 진공청소기로 흡입하는 후버링 작업을 하며 관리한다(치즈 진드기에 대해서는 6장 몽고메리 체다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숙성창고에서 이렇게 6개월을 보낸 치즈는 표면의 라드를 전부 흡수해 모슬린이 더 이상 끈적이지 않으면 판매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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