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레스터 치즈 Red Leicester
농장주인 데이비드를 만난 건 농장에 도착한 지 이틀 뒤 늦은 오후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메리를 만나 내 이야기를 들은 듯 나를 이미 아는 사람처럼 대했고, 농장 안쪽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 대부분의 영국인이 그러하듯이 밀크티를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데이비드도 그렇고 아내인 조도 그렇고 집안 대대로 농장을 하며 살아왔단다. 그러던 중 레드레스터 치즈 제조법이 적힌 오래된 노트를 발견하면서 2005년 치즈 제조를 시작했다. 사라진 지 50년이나 된 치즈를 만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그에게 정신이 나갔다며 고생만 할 거라고 말렸다. 하지만 그는 치즈 메이커로부터 고작 사흘 교육받은 후 몸으로 부딪치며 치즈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농장 이름은 무슨 뜻이에요?”
“그건 옛날에 있었던 농장 이름을 붙인 거예요. 처음으로 레스터치즈 치즈를 만들었던 농장 이름이에요.”
‘스파큰호’는 1745년부터 1875년까지 레스터셔 외곽에 위치했던 농장이자, 레스터 치즈를 만든 조지 채프먼 George Chapman이 꾸렸던 농장의 이름이었다. 채프먼의 사후에도 130년간 운영됐지만 결국 경제난으로 문을 닫았다. 데이비드의 농장은 바로 그 스파큰호 농장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이었다. 50년 만에 부활한 치즈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싶었던 게다.
따끈한 밀크티를 깨끗이 비웠을 때쯤 데이비드가 불쑥 물었다.
“농장 구경은 좀 했나요?”
“음, 치즈 만드는 것도 농장 구경이라면요.”
그는 미소 짓더니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죠. 농장 구석구석 탐사하게 해 줄게요.”
우리는 먼저 숙성창고로 향했다. 숙성창고는 이미 구석구석 구경한 뒤였다. 치즈 제조 과정을 거의 보고 나면 나는 많은 시간을 숙성창고에서 보내곤 한다.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치즈들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마치 그들이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 치즈가 수많은 곰팡이를 피워내면서 자기를 이야기하면, 나는 그 습한 공기며 냄새로 그들을 이해한다. 이제 막 창고에 들어온 하얀 덩어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든 아기처럼 느껴지고, 무수한 곰팡이를 피워내며 바삐 움직이는 치즈에게서는 삶의 역동성이 느껴지고, 이제 곰팡이도 잦아들고 판매되기만을 기다리는 치즈에게서는 속이 꽉 찬 완숙미가 느껴진다.
숙성창고에 이제 막 들어온, 아직 흰 모슬린에 싸인 치즈는 숙성 초기엔 어두운 녹색의 곰팡이에 얼룩덜룩 덮이고, 숙성이 진행될수록 불그스름한 갈색으로 변한 뒤, 숙성이 완성될 무렵에는 치즈 속처럼 오렌지색으로 바뀐다.
숙성창고에서 나와 젖소를 풀어놓은 들판을 둘러보던 중, 돌연 커다란 바위 앞에 멈춰 선 데이비드가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보여주듯이 말했다. “이 바윗돌은 옛날에 레스터 치즈를 만들 때 썼던 누름돌이에요.”
오래전 레스터 치즈를 만들던 때에는 압축기가 없어 누름돌을 사용했는데, 데이비드는 1800년대에 사용됐던 귀한 골동품을 구해다 놓은 것이었다. 전통을 이어보겠다고 이리저리 분주했을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레드레스터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 보고 나서도 나는 데이비드의 집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 그의 가족과 함께 동네 펍에서 열린 파티에 다녀오기도 하고, 발이 푹푹 패이는 진흙을 밟으며 농장 안의 젖소들을 보기도 하고, 미처 묻지 못했던 치즈에 관한 질문들을 모아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떠나기 이틀 전, 나는 영국 지도를 펼쳐놓고 데이비드에게 다음엔 어느 치즈 농장에 가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내게 남은 시간과 궁금한 치즈 몇 종류를 언급하자 데이비드는 자신이 농장주들에게 연락해볼 수 있다며,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랭커셔 치즈 농장에서 와도 좋대요. 언제든 괜찮다는군요. 그 사람 참 좋거든요.”
토요일 아침, 나는 북쪽으로 220킬로미터 떨어진 랭커셔 치즈 농장으로 떠나기 전에 데이비드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현관까지 나온 데이비드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요”라고 말했다. 조는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도 부엌 창문 너머로 내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나는 스파큰호 농장을 떠났다.
스파큰호 농장
Leicestershire Handmade Cheese Company
Sparkenhoe Farm, Main Road, Upton, Nuneaton, Warwicksh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