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치즈 압축기가 있는 농장

랭커셔 치즈 Lancashire Cheese

by 민희 치즈

스파큰호 농장을 떠나 북부로 200km를 올라와 랭커셔 캠핑장에서 주말을 보낸 후,

나는 아침 일찍 목적지에 도착해 회색 벽돌이 불규칙하게 박힌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왔을 뿐, 농장임을 알리는 표지판조차 없는 그곳은 너무도 고요해 운동화에 흙 밟히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정도였다. 그 정적 속에서 마당을 조심스레 둘러보다가 건물 지붕 아래에 새겨진 농장 이름을 발견했다.


‘Mrs Kirkhams Lancashire Cheese 2007’


유리가 끼워진 나무문을 쭈뼛 열자 작은 사무실을 지나 분주하게 돌아가는 치즈 제조장이 바로 보였다. 한창 작업 중인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문 앞에 가만히 서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뒤를 돌아본 작업자가 날 발견했고, 멋쩍은 듯 서 있던 내게 그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왔어요? 내가 통화했던 그레이엄이예요.”

그저 스파큰호 농장에서 데이비드가 전화를 걸어 나를 소개해주었을 뿐인데, 그레이엄은 마치 기다리고 있던 친구처럼 날 반겨주었다. 곧바로 그가 내준 흰 가운과 장화를 착용하고 어깨에 카메라를 걸친 뒤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작업장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저건 설마 치즈를 누르는 압축기인가요?”

그레이엄은 이런 반응에 익숙한 듯 그리고 조금은 자랑스러운 듯 웃었다.

작업장에는 여덟 대의 기계가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파랗게 칠해진 두껍고 견고한 철 소재로 곳곳이 물결처럼 둥글게 마감된, 낡았지만 멋스러운 기계였다. 구조는 2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치즈 몰드를 두 개 혹은 네 개까지 한 번에 압축할 수 있는데, 기계 윗부분에 배의 조타 핸들을 연상케 하는 손잡이를 돌리면 철판이 내려와 치즈를 눌러주는 방식이었다.

“세상에! 손으로 돌려서 쓰는 치즈 압축기는 처음 봐요. 아직도 사용되는 건가요, 아니면 진열 용인 가요? 50년은 넘어 보여요.”

“100년도 넘었을 거예요. 우리 할머니 때부터 사용하던 기계인데, 물론 진열용은 아니에요. 지금도 매일 사용하고요. 이제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지만 몇몇 치즈 농장에서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어요.”


영국 중부 슈루즈버리에 살던 토머스 코벳 Thomas Corbett이 만들었다는 표기가 있다.


버밍엄과 암스테르담 전시회에서 치즈 압축기로 1등을 받았다는 표기가 있다.

‘스크루 치즈 압축기 Screw cheese presser’라 하는 이 기계는 1800년대 후반의 것으로, 둥근 핸들을 나사처럼 돌려 높이를 조절하는 방식(screw presses designed)으로 제작되었다. 영국 중부 슈루즈버리 Shrewsbury에 살던 토머스 코벳 Thomas Corbett이 만들었는데, 그는 농기계를 만드는 엔지니어였다. 1800년대 후반 영국 치즈 농가에서는 이런 수동식 압축기가 많이 생산됐던지 다음에 찾아간 치즈 농장들에서도 비슷한 기계를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제작자는 모두 달랐다).

예를 들면 레스터셔의 가너와 그의 아들 Garner & Son(Leicestershire), 엘스미어의 클레이와 그의 아들 Clay&Sons(Ellesmere) 같은 식으로 기계마다 제조자 이름과 제조 지역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토머스 코벳은 다른 제작자들이 만든 기계에 부품을 공급하기도 했는데, 주로 핵심 부품인 회전판 부분이었던 것을 보면 그는 당시 영국에서 유명한 엔지니어였던 듯하다.


나는 그레이엄의 설명을 들은 뒤에도 한참 동안 압축기 앞에 서 있었다. 대부분의 치즈 농장에서는 전동식 압축기를 이용해 몰드를 열 개 혹은 스무 개씩 겹쳐서 치즈를 압축한다. 압축은 숙성에 들어가기 전 치즈 제조에서의 초기 작업을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커드 속에 남아 있는 수분(훼이)을 빼냄과 동시에 잘게 부수어진 커드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는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치즈 위에 두꺼운 나무판을 덮은 후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거나 기다란 막대를 지렛대 방식으로 눌러 수분을 빼냈지만 한 번에 고작 두 개 정도만 쌓을 수 있었다. (앞의 글 레드레스터 농장에서, 데이비드는 치즈 누름돌을 역사적 산물로 갖고 있었다.) 요컨대 이 수동식 압축기는 오늘날의 전동식 압축기와 오래전 돌을 이용해 누르던 방식의 중간 단계인 것이다. 매번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필요가 없고 한 번에 네 개까지 압축할 수 있었으니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계였을 게다. 요즘은 어느 농장에서든 전동식 압축기를 사용하는데 두 방식 사이에는 기술적인 시간을 많이 뛰어넘은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스크루 방식의 이 압축기계는 그 커다란 간극을 매워주는 과도기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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