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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Mar 16. 2024

프롤로그.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이혼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오랜만에 돌잔치 소식을 들었다.

돌잔치는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자취를 감춘 행사였다.

집에서 간소하게 혹은 가족끼리 하는 가족행사로 대체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귀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제 돌잔치는 희귀한 행사가 되었다.

친구의 돌잔치 소식을 듣고 나는 생각했다.  

   

‘이 얼마나 귀한 대한의 자식들인가!’     


그것도 쌍둥이 돌잔치라니 국가적 축제의 장이 아닐 수 없다.

애국가정의 축복을 더해주기 위해 나는 참석을 맹세했다.     

대한민국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아파하고 있다.

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2 명이다.

곧 0.7도 와장창 깨지고 0.6을 바라보고 있다.

멀지 않은 이야기일 듯싶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혼하는 나이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높아진 연령 때문에 출산을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한 명 이상의 출산은 기대하기 힘든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아이 없는 삶을 택한 부부들도 늘어간다.     


이제는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해도 아이는 하늘이 주신 축복이 아닌 선택사항 정도이다.

결혼 후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많은 리스트 중 하나쯤으로 여겨진다.

체크가 되느냐 빈칸으로 남느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마치 혼수용품처럼 말이다.

물론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부부는 제외이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사랑스러운 아이가 생기길 응원한다.    

 

더불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혼이야기.

혹은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신세한탄 이야기.

주위가 아닌 이곳 브런치만 해도 이혼이야기가 넘쳐난다.

안타깝기도 하고 언제고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 긴장감은 나를 움츠려 들게 한다.

그들도 한때는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혼을 염두하고 결혼을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태양처럼 빛나는 결혼 생활을 꿈꿨을 것이다.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방 안에서 굿모닝 키스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결혼생활을 꿈꿨을 것이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말이다.     


애석하게도 결혼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살아보기 전까지는 이 남자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동거를 많이들 한다고 하지만 혼인서약을 한 결혼과 동거는 차이가 확실히 있다.

또한 막상 살아보니 세상에 수많은 변수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멀어지게 할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     

이혼은 결혼의 달콤함을 산산조각을 낸다.

배우자가 대역죄인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런 이혼사유들 말이다.

재판상 이혼 사유는 6가지 정도가 있다.     


1. 배우자가 불륜과 같은 부정한 행위를 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를 가지고 다른 한쪽을 유기한 때

3.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4.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5.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배우자의 생사가 불분명할 때

6. 이 외에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님’이라는 글자가 ‘남’이 되는 조건들이다.

위 모든 사유는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름은 들어 보았나 ‘증거수집’ 말이다.     


그런데 6번째가 문제다!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 말이다.

1년 2년 3년 지속된 작은 일들이 결국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도박, 바람, 가정폭력, 아비어미도 모르게 인사불성이 되는 음주등

반복되는 쓰레기 같은 이유는 이혼이 답이다.

용서는 개풀.      


하지만,

대화의 단절, 생각의 차이 등 상대방을 정확히 몰라서 혹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사이는 좁힐 수 있는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 시간이 누적되어 좁히지 못할 만큼 벌어져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전문적 상담이나 오은영 박사님에게 사연을 보내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았을 땐 ‘저런 사소한 이유로 이혼을 해’라고 한다며 핀잔을 줄지 모른다.

남들이 보면 하찮은 이유가 당사자에게는 정말 중대한 사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수백만 수천번 잽을 맞아 결국 마지막 잽에 다운이 되는 것이다.

정작 잽을 날린 사람은 본인이 얼마나 많은 잽으로 상대방에게 대미지를 줬는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내가 바람을 폈어 뭘 했어?”     


꼭 대역죄인이 되어야만 이혼사유가 될까?

수많은 잽은 맞는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절벽 끝에 서서 살고자 몸부림을 치게 된다.

쉽게 사이를 좁힐 수 없게 된다.     

나는 이제 사이를 좁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결혼을 추천하는 혼인주의자이다.

미혼남녀에게는 결혼을 늘 추천한다.

(배우자 선택을 아주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한다.)

딩크족보다는 듀크족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혼은 지옥이란다.

육아는 전쟁이란다.     


다행이다.

지옥의 반대말은 천국이 있고,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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