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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Apr 09. 2024

지갑을 주웠는데 고민했습니다.

과연 결론은?

 

어린 시절 커피자판기나 음료자판기에 거스름돈이 나오는 구멍에 손을 넣어 남은 돈이 있나 확인한 적이 있다.     

(“저만 그랬나요?”)     


백 원 이백 원 때론 오백 원도 있었던 적이 있었다.

동전이 손에 잡히는 순간.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어린 시절 복권은 몰랐지만 아마도 복권에 당첨된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길을 걷다가 땅에 떨어진 동전 하나 발견하게 되면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적 용돈 벌이는 이제 추억이 되었고,

10대 20대 30대를 거쳐가며 나는 조금이나마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다.

단지 도덕적인 모습을 뽐낼 기회가 없어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스스로 도덕적이고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 자부했다.     


학창 시절 선행상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착한 사람이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을 컸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드디어 도적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시골에 아버지 어머니를 뵙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주차를 했다.

뭘 이리 바리바리 싸주셨는지 짐이 한가득하다.

돌아오는 길에 어지러운 세상과는 담을 쌓았는지 평화롭게 잠든 아들을 업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지갑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괜히 나서서 피곤한 일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했고 등에 업혀 있는 26kg 7살 아들은 제법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둘러 발걸음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를 온전히 눕히고 아내는 집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바리바리 싸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챙기고자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도 우둑하니 있는 지갑은 나의 도덕적인 마음을 평가하고자 유혹하기 시작했다.     


‘어라? 아직도 있네? 장난감 지갑인가?’     


나는 끝내 지갑을 들어서 확인을 해보았다.

지갑을 여는 순간 신사임당이 어쩜 그리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지

신사임당's 들은 대충 봐도 8장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학창 시절 선행상을 밥먹듯이 받았던 나.

도덕적으로 매우 바르게 성장 했다고 생각했던 나.

그 순간 고민을 하고 있는 ‘나’로 변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고민은 짧았다.

만약 고민이 길었더라면 나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지갑을 들고 관리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지갑을 주었습니다.”

“어디서 주우셨죠?”

“주차장에서요.”

“몇 동 사세요?”

“000동 000호 살고 있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관리실을 빠져나왔다.

사실 cctv도 많고 수많은 블랙박스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주차장이기에 내 행동에 결괏값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고민 속에서 나에게 유혹의 속상임을 하던 비도덕적인 악마의 소리를 이겨냈다는 것이 나를 참으로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달하고 있는 헌혈 말고 다른 선행을 했다는 사실은 괜스레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칭찬받고 싶은 강아지처럼 머리를 내어줄 계획이었다.

칭찬보다는 아내는 금액을 확인했냐고 물었다.

괜히 좋은 일하고서 돈이 다르다고 도둑놈 취급받으면 어쩌려고 하냐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관리실로 달려갔다.    

 

‘젠장. 착한 일도 하기 힘든 세상이 고만.’   

  

우여곡절 끝에 해프닝은 마루리가 되었다.

그제야 나도 두 다리 뻗고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도덕적인 나의 모습은 잊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저녁.

하루일과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쿵쿵거리지 말자를 반복하며 늘 그랬던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딩동”

“이 시간에 초인종소리가?”     


올사람이 없는데.

인터폰에 비친 부부의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여보.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

“우리 아파트 빌런은 역시 우리 집이었나?”

    

죄인처럼 문을 열었다.

두 손에는 싱그러운 딸기 한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감사인사 드리려고 왔습니다.”

“남동생과 남동생 여자친구가 어제 집에 놀러 왔었는데 지갑을 잃어버렸거든요.

지갑을 찾아주셔서 동생 여자친구가 아침에 왔다가 부재중이셔서 저희가 왔어요.”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딸기는 이미 내손에 들어와 있었다.

짤막한 손글씨 편지는 내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솔직히 고민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지갑을 찾아준 나.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세상에 감사인사를 하는 지갑은 주인.

짧지만 벚꽃이 만발하는 봄 좋은 추억이 되었다.

    

나의 무용담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들은 상황을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맛난 딸기입속에 와구와구 넣어 맛나게 먹고 있었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이지만,

가끔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행복을 줄 때가 있다.

     

“여러분은 지갑이나 돈을 주우시면 고민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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