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내 최상급 시설의 실버타운과 그 내부의 요양원에서 이제 좀 안정이 되어가고 있던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조금 멀어지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일도, 종종 보호자 노릇을 하는 일도 여전했지만 심리적으로는 거리를 두었다. 아버지의 불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폭발하고 말았다. 열한 통이나 되는 분노에 찬 메일을 연달아 받으며 새삼스레 확신하게 된 사실은 내 마음이 완벽하게 닫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버지는 그간 내가 한 일들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40대를 바쳤는데. 논문을 완성해도 써먹을 데가 없을 나이에 오기 하나로 박사학위를 마쳤는데. 그래서 혼자 걸어가야 할 인생에 대한 준비를 하나도 해둔 것이 없는데. 모두 내가 미숙하고 부족한 탓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노고를 인정하고 위로해 주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나를 질책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견딜 만큼 내 그릇이 넓고 깊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바로 절연을 선언했다. 참을성이 강한 사람들은 임계점이 부지불식간에 마치 급작스러운 것처럼 찾아오곤 한다. 나는 내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성찰해야 했다. 그전에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고 파헤쳐보는 작업은 드문 드문 진행되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최근에서야 일단의 끝맺음을 보았다.
일단 나는 나르시시스트 스팩트럼에서 나르시시스트의 대척점에 위치한 에코이스트이다. 타고난 성질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성장과정으로 미루어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기도 하다. 에코이스트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 하며 갈등이나 경쟁을 피하고 가능한 선까지 꾹 눌러 참는다. 나르시시스트 남편은 아마 이런 나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았을 것이고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웠을 것이다. 또한 배려심이 많은 에코이스트는 타인을 배려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배제해버리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을 우선으로 두지 않았다. 기본값은 부모님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그건 어느 정도 자동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행위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내 삶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었다. 도움 요청을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저 혼자서 떠안으려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래야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사랑까지 받을 수 있다고 내 잠재의식이 속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나는 혼자서도 뭐든지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내 또래보다 열 살이 많았던 부모님은 나를 케어하기 버거웠을 것이고 혼자서도 잘 놀고 뭐든 잘하는 딸을 칭찬하는 일은 딸에게도 부모에게도 모두 만족스러운 거래관계를 형성해 주었던 거 같다.
애착형태로 말하자면 나는 혼란형이다.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그리고 불안형과 회피형을 모두 지닌 혼란형 중에서. 직관적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좋고 나쁨으로 단순히 말하자면 최악의 형태이다. 타인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없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독립적이기만 할 수도 의존적이기만 할 수도 없다. 양자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건강한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이다. 혼란형의 경우 상대방이 나의 의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의존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음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인데, 결국 관계 속에서 애착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의존 욕구를 억압한다. 나의 이런 성향은 역시 어린 시절에 부모들로부터 거부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의 요구에 대한 답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으며 어리광이나 떼쓰는 일에 익숙했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애착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은 없다. 남편을 끝까지 배려하기만 하고 나를 버려가면서까지 부모님을 돌봤던 건 애착관계를 맺고 싶어서였겠지만 역시나 실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남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리석었다. 더 일찍 깨닫고 나를 좀 더 보살폈더라면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나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성향이 있다. 5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