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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는 임신, 준비 없는 시작.

두려움 끝에 마주한 엄마라는 이름

by 온오프

준비 없는 임신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임신이라는 단어 자체를

진지하게 붙잡아 본 적조차 없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언제나 회의적이었고,
스스로를 분명한 비혼주의자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갑작스럽게 내게 찾아온 생명.
이 작은 존재를 저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두려움보다 먼저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원망했다.
“조심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끝없는 자책 속에서 불현듯 다른 감정이 스며들었다.


‘과연 어떤 아이일까?

나를 닮을까, 그 사람을 닮을까?’

겁과 호기심이 뒤섞여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오르락내리락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서로 결혼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막연한 상상에 가까웠다.

구체적인 준비는커녕,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며
미뤄왔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였다.
불안정했던 삶에 불쑥 끼어든 새로운 존재.

‘아이라니, 아이라니….’


그 무게를 떠올리는 순간 숨이 막혔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결코 가벼운 약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임신 소식을 알릴 때
소위 ‘임밍아웃’이라 하여

이벤트처럼 준비하기도 한다.


귀여운 선물 상자에 초음파 사진을 담거나,
촛불을 켜놓고 가족에게 깜짝 발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할 생각도,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2021년 1월 5일.
나는 선명한 두 줄이 찍힌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그에게 전송했다.


그게 나의 전부였다.


곧 도착한 그의 답장은 의외였다.
“잘됐다.”
“축하해.”

짧고 간단한 말들이었는데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놓였다.


내가 미처 바라지 못한 안정감이
그 몇 마디에 담겨 있었다.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마치고 병원 같이 가보자.”

백 마디 화려한 위로보다
그 한마디가 내게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임신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직 부부가 무엇인지도,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도 잘 알지 못한
철부지 같은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변화 앞에서 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에게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엄마의 공백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그 기억 위에 덧입혀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엄마 노릇이라는 걸 나는 할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탓하다가,
다시 애써 다독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마음 깊은 곳에서
단단한 다짐 하나가 생겨났다.


나는 절대 우리 엄마처럼 되지 않으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아이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지켜내리라.


그 순간부터 나는
비혼주의자도,

두려움에 떨던 한 사람도 아닌,
어느덧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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