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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in Aug 09. 2021

자연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여행보다는 새로운 일상의 마주침,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

여행에서 경험하는 것들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된 많은 생각들과 느낌을 적는 글이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라면 이 책의 경우는 조금 일반적 범주를 벗어나 있다. 여행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일상을 찾아 적응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이 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는 '나'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에세이의 범주에 넣은 것은 간접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런 새로운 일상의 도전이 나의 삶고 비슷한 면이 많았고 나와 다른 일상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의 자연,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수많은 소재들까지 더할 수 있으니 나의 '여행 읽기'에 최적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알래스카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덮인 산과 검푸른 바다, 에스키모 정도일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알래스카가 과거 소련이 미국에 헐값에 팔아 넘긴 추운 동토의 지역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추운 땅.. 그것은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인간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태고적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야생이라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작가가 알래스카를 동경하며 그곳에 정착한 것은 아마 세상의 혼돈에 물들지 않는 자연을 대표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알래스카는 지역적인 이름이 아닌 마음 속 편안을 간직한 쉼터로 대표되는 상징성이다. 알래스카에 가고자 하는 마음 이전부터 우리는 너무 대립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함과 다름아니다.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알래스카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고 각자의 영역에서 인간다움을 간직하며 새로운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단지 문명의 세계와 다른 점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개척하며 살아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남들이 정해준 시간에 이끌려 다니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 살아가면 갈수록 나를 찾아가는 생산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간단한 명제와' 세상은 항상 변하면서 살아가되 모두가 여행하는 나무처럼 돌아온다'는 운명과 회귀론에 바탕을 둔 토템 신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동경하며 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결국은 물질에 집착이 정신의 자유를 지배하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가 만난 세르파가 한 말이 귓가를 맴돈다.


조금 쉬어야 겠소. 아직 마음이 따라오지 못했소. 마음이 우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오"

<여행하는 나무>는,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시간여행일지도 모른다. 알래스카의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적어 조금은 아쉽지만, 그것은 이미 알래스카가 작가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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