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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05. 2022

신청곡은 받지 않습니다만

우쿨렐레 입문기 #20


우쿨렐레 레슨을 시작하고 난 뒤 두 달이 지 무렵이었다. 연습에 완전히 빠져 있어서 하루에 한 시간씩 배운 내용을 복습하곤 했다. 그때 배운 반주는 너무 쉽고 간단한 주법이었기에 그렇게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초보자의 무서운 몰입 같은 것이 있었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 방 천장에서 당구공이 굴러다녔고, 수영을 배울 때는 수시로 물속에 뛰어드는 상상을 하며 팔을 저어보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소중인연들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고작 1년을 근무하고 헤어졌음에도 우리 다섯은 정기적으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로 혼자 올라온 이후에도 모임을 위해 두세 달에 한 번씩 고향을 찾았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술집에서 모이다가, 결혼을 하고 배우자와 아이들이 생기면서부터는 펜션에서 모여 반갑고 왁자지껄한 하룻밤을 보내고 짦은 여행을 겸한다.



워낙 오랜 우정을 다진 그들이라 우쿨렐레 초보는 거리낌 없이 모임에 악기와 악보를 챙겨 갔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들, 모닥불과 다량 다종의 술병들이 함께 하는 자리. 둘씩 셋씩 이야기를 나누기에 나는 모닥불 앞 연주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기를 꺼내 들었다. 어설픈 반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혜화동에서〉 같은 쉬운 곡들을 연주하며 노래도 불렀다.




"사람들이 내 연주를 듣긴 했지만 귀를 기울여주지는 않았다. (...)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나는 지워지면서 현존하는 법을 배웠다. 너무 환한 빛 아래 있지도 않고, 바라봐주는 눈길도 없이 연주하는 법을"

- 알렉상드르 타로


그때의 내 기분은 딱 이 과 같았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도란도란거리고, 때로는 와하핫 웃음이 번지기도 하는 자리에서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런 나만의 작은 연주가 썩 마음에 들었다. 때때로 아이들이 다가와 호기심의 눈빛과 질문을 던지긴 했어도 그쯤은 괜찮았다.



그런데 이런. 한 친구가 갑자기 신청곡이 되냐고 묻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건 예상 못했다. 멋쩍게 안된다고 거절을 하,  모두가 각자 즐기던 순간을  이어지만 나는 아까보다 괜스레 더 작아져서 연주를 더할 수가 없었다. 주섬주섬 악기를 정리하고 그 이후로굳이 모임에 갈 때 악기를 챙기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친구들이 내 곁에 오래 함께 하고, 그들의 가족들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열 다섯 모두 이 모임을 좋아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고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우리 모임이 참 좋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함께 보 우리도 같이 성장 수 있어 더 좋다.


내 삶의 절반을 이 모임과 함께 했고, 악기를 배운지 1년이 넘어간다. 나는 그들에게 무대 위 연주자가 아닌 배경 음악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여전히 신청곡은 받지 못하겠지만, 그때보다 레퍼토리 많아진 지금이라면 그날의 무드에 어울리는 곡을 골라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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