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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27. 2022

내 인생의 BGM

우쿨렐레 입문기 #18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을 좋아한다. 그 유명한 이슬아 작가 《아무튼, 노래》로 처음 접했는데, 그 글이 그랬다. 생활 글쟁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나의 삶과 음악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우쿨렐레 레슨 선생님이 좋아하는 곡을 물을 때마다 머뭇댔던 것은 ‘이 곡이 연주에 적합할까’라는 필터를 거쳤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내 삶 구석구석에도 농도 짙은 음악들이 자리하고 있다.




어릴 때, 얼리어답터였던 아빠가 ‘워크맨’이라는 플레이어를 선물해 주셨다. 그걸로는 주로 라디오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재생했다. 기억나는 곡은 이상은의 <Don’t go baby>다. 그의 쓸쓸한 음색과 가사가 잘 어우러지는 곡.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건 아니라 하면서도 가지 말라는 애절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어른이 되면 순정만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 매몰차게 떠나기도 하고 붙잡고 매달리기도 하는 건가, 어른의 삶은 처절하구나, 생각했다.



당시에는 가사라는 게 앨범을 사야만 제공되는 것이어서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의 가사가 헷갈릴 때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어떤 가수들은 제 흥에 취해 발음이야 뭉개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수 없이 테이프를 돌리고 돌려도 알 수 없는 가사가 나를 미치게 했다. 지금은 몇 단어를 검색하면 노래 가사가 주르륵 제공되니 편하기는 하지만, 알고 싶은 간절함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쉽게 얻는 것은 종종 무언가를 뺏긴 기분을 들게 한다.




대학생 때는 주로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중에서도 젊음이 절정이던 시기는 스무 살, 민속 주점에서 일하던 때였다. 그 건물은 중심가에 위치한 유흥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1층은 횟집이고 2층이 내가 일했던 주점, 3층은 재즈바였는데 1층과 3층 알바생들은 친구 관계였다.


모두 젊은 사장님들이라 장사는 뒷전이고 각 층을 오가며 알바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게 주된 일상이었다. 여자 둘, 남자 넷으로 구성된 여섯은 먼저 1층에서 식사하며 소주를 반주로 마시고, 2층에서는 동동주에 파전을 걸쳤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먹는 시늉만 하곤 했다. 거나해진 사장님들을 떨구고 우리는 3층에 올라가 칵테일을 만들어 먹으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거나 포켓볼을 쳤다.



1층 그린 군은 한 학번 차이가 나는 빠른 년생 나를 누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3층 칵테일 군은 나에게 누나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린은 나에게 지속적인 호감을 비쳤지만 내가 볼 때 그는 그저 동생 같기만 했다.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테일에게 기울고 있었는데, 나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기운을 감지한 건 우리가 아닌 그린이 먼저였다.


어느 취한 밤, 우리는 재즈바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취한 그린이 벨벳 소파에 잠들어 있었고, 나와 테일은 자기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고 있었다. 달달한 밤이었다. 어느 순간, 자는 줄 알았던 그린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뛰쳐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박진영과 진주가 함께 부른 발라드가 흐르고 있었다. 문득 가사가 귀에 들어왔고, 우리는 그제야 서로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음을 알아보았다.


그대는 내 이 맘을 모두 빼앗아 갔어요
그대 날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내 가슴도 온통 그대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럼 이제 우리 사랑할까요




테일과 일 년의 서투른 만남을 끝내고, 시간이 흘러 나는 다른 대학생 막걸리군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술과 음악과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지인들과의 자리에 나를 초대했다. 나와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은 노래방에 가서 꼭 내게 전화를 했다. 익숙한 BGM이 흘러나왔고, 간주 점프도 없이  을 가다듬곤 했.


늘 같은 노래,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 불러주는 걸리였다. 4년을 만나면서 걸리에게 100번쯤 고백을 받은 것 같다. 수없고백 덕분에 이 노래의 전주만큼은 그 어떤 보다 생생하다. 그럼에도 고백송인 듯, 작은 떨림을 담아 부르던 걸리의 순정에 감사한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대단하다. 2절까지 반복되는 걸리의 오글거림을 그토록 오래 참아준, 진정한 친구들이다.




달브와는 직장 동료로 만났다. 사수와 부사수 관계에 있던 우리는 늘 으르렁거려서 사람들이 톰과 제리라고 불렀다.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갔지만, 달브가 매우 세심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달브는 나보다 술을 더 못 마신다. 그래서 드물게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면 멀쩡한 정신으로 노래 불렀다. 유흥이나 오락을 좋아하지 않서 노래에전혀 관심 없을 것 같던, 까칠한 사수다.



그의 목소리는 김동률의 노래에 최적화되어 있다. 수없이 들었던 <취중진담>전혀 다른, 새로운 노래로 들렸다. 노래를 부를 때 살짝 들리는 턱과 조금 찡그린 눈썹, 노랫말마다 불거지는 목젖이 좋았고 그 무엇보다 노래를 정말 잘 불러서 좋았다. 그는 노래를 뽐내려고 부르나 자신에 취해 부르지 않다. 결혼 이후에는 그런 자리가 없기도 하고, 여전히 잘 나서지 않는 그여서 노래를 들은 지가 오래다. 가끔 몹시 듣고 싶은데, 여전히 쑥스러워하는 달브가 불러줄지는 미지수다. 와인을 한 잔 먹이고 졸라 볼까.


어느 아메리카 원주민 치유사는 병든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렀던 때가 언제였죠?"
그는 알고 있었다. 노래할 수 있는 한, 곧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 정희재,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중에서


노래할 수 있는 한 회복할 수 있단다. 그렇게 지난 과거도 살아날 수 있으려나. 오래된 나의 곡들은 아마도 내가 원하우쿨렐레 악보로는 찾기 힘들 것이다. 실력을 더 키워서 언젠가  주제곡들을 내 손으로 편곡해서 연주해 보리라. 음악을 타고 악기 줄을 퐁당퐁당 넘어서 과거의 나와, 한때 몰두했 옛 추억을 만나러, 가보자.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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