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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22. 2022

나의 연주는 잠시 빨간불이었지만

우쿨렐레 입문기 #17


지난 시간에 연습을 시작한 곡은 이무진의 〈신호등〉이다. 선생님의 주문으로 내가 골라온 곡과 선생님의 선곡이 같았다. 이런 사소한 의견 일치가 그날의 연주 동력이 되기도 한다. 먼저 원곡을 들어보고 주법을 파악하기로 했다. 들을 때마다 흥이 나는 곡이다. 곡이 신난다는 건 주법이 화려하고, 화려하다는 건 어렵다는 거다.


슬로우고고 주법의 변형 패턴이 희미하게 들렸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난이도 있는 이 곡의 주법을 소화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가요 주법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변형 주법에 중간중간 음을 멈추는 기교인 뮤트가 들어가니 양손과 머리까지 혼란했다.



소리를 고의로 멈추뮤트 방법 두 가지다. 눌러 잡았힘을 빼고 줄에 손가락을 대기만 해소리를 뭉툭하게 만드는 왼손 뮤트법과 오른손 손바닥을 줄에 대고서 튕기는 팜뮤트. 팜뮤트는 통통거리는 음색이 매력적이다.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면 완성도 있는 뮤트가 나온다고 하신다. 하지만 적절은커녕 한 손 뮤트도 헤매고 있는 난데.




나의 입원과 선생님의 확진으로 2주간의 휴강이 생겨 연습을 팽개치고 띵가띵가 놀았던 터였다. '논다'는 의어가 하필 '띵가띵가'여서 맘에 걸렸지만 어지럽다는 핑계가 있어서 그리 불편하지 않게 빈둥거릴 수 있었다. 이러다 숙제 검사 때 또 내 자신이 막 싫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으나 놀려는 의지가 조금 더 강했다. ‘어쩌긴, 또 반성문 글감이 생기겠지’라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듣는 선생님 연주가 듣기 좋았다. 멜로디도 없이 시범 삼아 들려주시는 기타 반주마저 시원스러워 듣기 좋고, 선생님이 맞추는 발 박자가 작은 방을 진동시키는 순간도 좋았다. 긴 공백 때문인지 이번 수업은 더 활기가 돌았다. 선생님은 친절과 열정으로 지도해 주셨고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다.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이 무색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좌절을 거듭하는 나. 오른손가락과 왼손가락, 오른손 손바닥까지 떼었다 붙였다 하고 눈과 귀도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톱니바퀴 공정이 삐걱거린다. 여기에 자동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까지 더해지면 푸슉- 하고 고장나버릴지도. 연주가 어려워서 선생님에게 하소연했다. 난 이런 가사만 눈에 들어온다고. 손가락으로 내가 가리킨 악보 위 가사를 보시고 선생님은 크하하, 하고 웃으셨다.


난 아직 초짜란 말야~




꽉 채운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날 무렵에 “질문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선생님. 이럴 때 질문이 없으면 꽤 민망하다. 오늘은 문득,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악기가 몇 종류인지 궁금해져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클래식 기타 두 대와 일렉 기타 하나를 갖고 계시단다. 그리고 최근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곡이 발표되었는데, 가수를 잘 모른다고 하시며 보여주신 앨범은 이름난 아이돌의 것이었다.


친구들과 저가(?)로 품앗이 연주를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들려주신다. 그래서 나도 연주는 지지부진하지만 그럴 때마다 일기를 쓴다고 고백했다. “와아, 일기요?” 하시길래 부끄러워져서 “일기라기보다는 블로그 같은... “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글을 보신다면 얼굴이 화끈거릴 것 같다. 괜히 말했다.



아주 가끔,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연주에도 다시 재미가 붙는다. 개인적인 이야기란 신상정보가 아 고유한 대화를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적당한 화젯거리가 아닌, 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귀퉁이에서 떨어진 말들. 2주간 나의 연주는 잠시 빨간불이었지만, 오늘 수업과 함께 초록불이 들어왔다. 다시 기어를 넣고, 셀을 밟는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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