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소풍 갈 때나 먹는 거 아닌가?
한 끼 식사로 싸고 간편하면서도 영양분도 충분하게 들어있는 김밥.
요즘은 다양해진 김밥의 개성에 맞게 가격이 비싼 김밥도 많더라고요.
70~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4남매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고 간식의 종류가 요즘처럼 많지 않던 시절, 집에서 엄마가 싸 주시는 김밥은 별미였으며 특식이었죠.
재료준비부터 만들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김밥은 4남매가 성인이 되어서도 모여있는 날이면 함께 만들어 먹는 특식이 되어 같이 만드는 재미까지 쏠쏠했습니다.
반면, 남편은 아들 3형제 중 막내였고 바쁘신 어머님은 평상시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많이 못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니며 학급 회장등을 맡았었는데 소풍을 갈 때도 어머님이 김밥을 싸주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보통, 예전에는 학급의 임원들이 담임선생님의 김밥도 준비해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남편은 담임선생님의 도시락은커녕 본인의 도시락도 보통의 밥과 반찬이 있는 일반 도시락을 싸갔다고 합니다.
하물며 어머님은 학기 초 임원을 선출하는 시기가 되면 남편에게 임원을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답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 일화입니다.
그런 남편이 결혼 후 친정집에 방문한 어느 날.
그날도 특식으로 동생들이 김밥을 만들고 있었나 봅니다.
남편은 속으로 '왜 김밥을 싸지? 어디 놀러 가시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평상시에 집에서 김밥을 싸 먹는 친정집의 광경은 문화충격이었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 시골 마을에 살며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닐 때는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엄마들이 돌아가며 아이들 간식을 챙겨다 주곤 하였습니다.
먹기도 편하고 영양분도 골고루 들어 있는 김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집에서 김밥을 말아 본 경험으로 내가 당번인 날은 김밥이 아이들 간식으로 당첨됩니다.
나는 전날 장 봐온 김밥재료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서 김밥을 3~40줄 정도 말아서 썰고 어묵탕과 함께 유치원에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빵이나 과자등이 아닌 집에서 손수 만든 김밥은 아이들, 선생님 모두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다양한 김밥의 종류가 있는 체인점의 김밥 보다 집에서 만든 우리집표 김밥을 더 좋아합니다.
"김밥은 소풍 갈 때만 먹는 거 아냐?" 하던 남편도 맛있게 먹습니다.
속이 허전할 때 또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우리 오늘 김밥 먹을까?" 한마디에 시작되는 우리의 김밥 만들기. 엄마의 손맛에서 이어져 내려온 우리 가족의 문화중 하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