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
12~3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우리 가족의 어려웠던 시절, 딸들과 떨어져 지내던 우리 부부는 딸들이 여름휴가를 보내러 지방에 있는 우리에게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와 떨어져 지내던 딸들이 여름휴가 며칠 동안엔 아빠 엄마의 품에서 조금은 여유 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다 돌아갈 수 있도록 품어주고 싶었습니다.
따뜻한 집밥과 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무슨 음식을 만들어 먹여볼까 생각하며 딸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평상시 딸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적어놓으며 기다렸죠.
외식하기, 영화 보기, 밤새 수다 떨기, 등산 가기, 수목원으로 김밥 싸서 산책 가기 등.
저녁장사를 하고 있던 우리 부부는 낮 시간을 활용해 오랜만에 딸들과 함께 보낼 부푼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딸들이 오는 날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우리 가족은 부둥켜안고 토닥이며 폴짝폴짝 뛰며 좋아라 했습니다.
며칠 동안 함께 보낼 생각에 가슴이 콩닥였습니다.
그동안 적어놓았던 버킷리스트를 딸들에게 보여주니 "강행군이 되겠군!" 하면서도 그동안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운 마음을 풀 수 있는 시간이니 알차게 보내보자며 다짐했습니다.
그동안 잘 챙겨 먹지 못했을 딸들과 근사한 횟집에서 아주 오랜만에 외식을 했습니다.
기분 좋게 외식을 하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데 작은 딸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정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 쉬게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더니 열이 많이 나는 겁니다.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의료원으로 데려가니 열이 높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입원 후 수액을 맞으며 열이 내리길 기다렸지만 열은 내리지 않고 열이 높은 원인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다 하는데 정확한 병명은 나오지 않고 열도 내리지 않았으며 설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딸의 병상 발끝에는 금식이라는 표지가 붙여지고 말았답니다. 저녁에 장사를 해야 하는 우리 부부는 큰딸에게 작은딸의 간호를 맡기고 생업을 위한 가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죠.
'함께 먹은 회가 탈이 난 걸까? 자매끼리만 지내느라 긴장 속에 지내다 오랜만에 아빠 엄마를 만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걸까?' 내 마음속은 속상함과 함께 병명이라도 알아야 제대로 된 처방으로 빨리 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수액으로 버티는 작은딸의 팔에는 설상가상 혈관통까지 생겨 주삿바늘을 이쪽저쪽으로 옮겨 가며 찔러대 시퍼런 멍까지 생겼습니다.
작은딸의 병간호를 맡아 밤새 작은딸 곁을 지키는 큰딸도 모처럼의 휴가를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차도가 없던 작은딸은 며칠이 지나고 어떤 약이 들었는지 모르게 다행히 조금씩 열이 내렸습니다.
새벽까지 장사를 마치고 조금 눈을 부친 뒤 동생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큰딸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김밥을 사가지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큰딸을 불러내 병실 앞 복도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간단히라도 식사를 하게 했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며 김밥을 먹는 순간, 작은딸이 힘이 없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뭐 먹어?" 하는 겁니다.
몸이 아프니 코가 예민해진 걸까요? 자는 줄 알았던 작은딸이 복도 쪽을 내다보며 하는 얘기에 화들짝 놀라,
"응, 언니 김밥 조금 먹이려고." 하니 작은딸이 "응..." 하며 고개를 돌리고 돌아누웠습니다.
(작은 딸은 열이 내리니 며칠 동안의 금식으로 배가 많이 고팠었나 봅니다. 바로 일반식을 먹을 수 없어 유동식을 조금씩 먹고 있었는데 음식 냄새에 고개를 돌려보니 언니랑 엄마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뭔가를 먹고 있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아픈 사람 옆에서 김밥을 먹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 마음 상한 작은 딸은 '다 나으면 나도 김밥을 꼭 먹어야지.' 하며 돌아누워 눈물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작은딸은 김밥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김밥을 먹을 땐 그 시절 아팠던 기억을 종종 소환해 아프고 배고팠는데 가족들만 모여 김밥 먹는 모습에 서러웠다고 서운한 맘을 토로하곤 합니다.)
그 해 여름, 손꼽아 기다리던 딸들과의 여름휴가는 작은딸의 병원생활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자매 둘만 있다가 아프기라도 했으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곁에 있다고 특별히 잘 챙겨 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입맛이 없을 때 또는 바쁠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은 우리 가족의 애환 속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