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02. 드러누울 자리는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by 빛새

2018년 7월, 한량처럼 대학생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던 나는 충동적으로 대학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부모님의 무언의 압박 때문에,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인생의 진로를 찾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뒤섞여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중간고사를 막 끝난 10월 중순, 내가 다니게 될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유학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어서, 독일에서 공부하다 오신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분은 자기 밑에서 공부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학생에게 대학원 생활과 독일 유학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DAAD가 무엇인지, 독일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려면 한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가야 한다던지 등, 그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 내용들을 아낌없이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에 시작될 대학원 정시 전형에 등록하라고 종용하셨다. 정시 전형 마감 기한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눈썹을 휘날리며 원서를 썼다.

(사실 그때 나는 다음 해 1월까지 대학원 추가 입학 신청을 받는 걸 몰랐었다. 그래서 그때 멋도 모르고 대학원 입학 원서를 썼다. 조금만 신중히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11월 초, 학과 사무실 옆에 있는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았다. 대학생 때 다니던 학과를 계속 다니게 된 지라, 면접관으로 참석하신 두 교수님의 얼굴은 매우 익숙했다. 입학 면접시험은 내 생각보다 쉬웠다. 대학원에서 하고 싶은 연구들, 학부 때 배운 이론 설명, 전공과 관련된 영문 단락 번역 등을 요구받았으며, 내가 쉽게 답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낯선 장소에서 오는 무서움과 면접의 긴장감 때문에 떨면서 대답했었다. 정신없이 시험을 치르고 나니, 며칠 후에 석사과정 합격 문자를 받았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던 때에, 내가 입학할 학과에서 공부하던 박사 과정 선배가 강의하던 수업을 수강했었다. 대학원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그분에게 대학원 생활은 어떠한지 짧게 물어보았다.


빛새 : 대학원 생활은 어떤가요?

선배 : 대학원 생활은 말이야, 정말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거야. 링 밖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조언을 받겠지만, 링 위에서 싸우는 건 온전히 너의 몫이거든.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묵묵하게 노력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날 그분에게 대학원 생활에 대한 많은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저 한 마디만 가슴속에 남았다. 나는 저 말의 뜻을 모른 채, 아무 생각도 없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Cover :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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