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열 번째 끼니 - 1

by 빛새

공즉시생, 공수래공수거, 무재원점, 무위자연. 고사성어, 사자성어에는 무(無)의 원리를 노래한 표현이 많다. 겉보기엔 별거 없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자체가 미친 존재감으로 각인된다.


식음료 시장에선 몇 년 전부터 '제로 칼로리' 열풍이 분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음료 매대에는 제로 콜라와 제로 사이다만 있었지만, 지금은 제로 우유 탄산, 제로 포도 탄산, 제로 체리콜라, 제로 자양강장제, 무당질 소주 등 0 칼로리로 마실 수 있는 음료수가 차고 넘친다.(몇십 년 전 마시던 무가당 주스는 열량이 듬뿍 들어갔지만, 제로칼로리 음료수는 아무런 열량을 얻을 수 없다) 당질과 지방질을 빼는 저열량 마케팅은 음료수를 넘어 과자, 아이스크림 시장까지 그 영향력을 넓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젠 아무것도 없어도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저칼로리 저칼로리 노래를 부르는데, 음식 트렌드 세터인 내가 이런 흐름에 맞춰가야 하지 않겠나? 집 앞 식자재 마트에 카레용으로 나온 살코기 듬뿍 들어 있는 돼지고기를 발견했다. 식비를 줄여보고 싶다는 짠돌이 같은 생각 반,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 반으로 카레용 돼지 등심 살코기를 구매했다. 호기심과 절약 정신 덕분에 이전에도 들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들어보지 못할 돼지기름 없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나만의 제로 지방 실험, 그 결과는 대실패. 지방 없는 김치찌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내 돈 주고 내가 만든 음식이라서 어쨌든 다 먹긴 했지만, 중간에 내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무릇 김치찌개라면 풍부하고 부드러운 지방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김치의 신맛과 고춧가루의 매운맛이 내 목을 탁탁 쳤다. 찌개 국물이 덜 밴 고기는 뻑뻑해서 잘 씹히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고무를 먹는 건지 고기를 먹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사흘 동안 이걸 먹으면서, 대기업 석학들이 왜 무지방 김치찌개를 내지 않았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빼는 게 만능은 아니네?


PBSE1115.jpg 열 번째 끼니 -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만두, 봄동겉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