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

아홉 번째 끼니 - 4

by 빛새

딱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집 주변에서 시장에서 파는 당면순대를 살 수 있었다. 5,000원이나 10,000원만 주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탱글탱글한 당면순대에 간, 허파 등의 돼지 부속물들도 함께 줘서 가성비도 높았다. 돼지 비린내와 뻑뻑한 간의 식감만 적응할 수 있다면, 저렴한 가격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영원한 건 없다던가.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 집 주변은 재개발에 들어갔고,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오래된 주거지를 싹 밀어버렸다. 지나갈 때마다 눈을 찌푸리게 했던 환락가도 무너졌지만, 내장 듬뿍 들어간 순대를 팔던 전통시장도 함께 사라졌다. 낡고 허름한 건물이 난립했던 판자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스카이라인이 되었다.


이번 달 주제를 '분식 한 상'으로 정하면서 SNS에서 메뉴 추천을 받았고, 그중에서 순대를 차려 달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오래전에 먹던 시장 순대를 다시 먹어보고 싶어서 집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집 주변이 싹 바뀌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식자재 마트나 대형마트에서 당면순대를 사서 재현해보려고 했지만, 돼지 내장을 살 수 없어서 그것도 허사로 돌아갔다. 결국 집 앞 순대국밥집에서 고기 순대를 샀다.


메뉴 구상을 너무 급하게 해서 옛 시장 터가 아파트로 바뀐 걸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그 순대집이 살아있었더라도 붕어빵 하나에 천 원 하는 요즘 물가라면 만 원 한 장으로 순대를 배불리 먹지 못했겠지. 추억 속의 당면순대를 못 먹은 게 아쉽지만, 이제는 같은 돈으로 그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으니 그 생각도 쉬이 사라졌다.


자그마한 실수 한 번으로, 현실을 직시했다.


PBSE1061.jpg 아홉 번째 끼니 - 떡볶이, 고고마튀김, 김말이, 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