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이야기 - 3
옛날 옛적, 내가 어린애였던 시절에는 밥에 비벼 먹는 가루(일본어로 후리카케)가 유행했다. 봉지 하나만 딱 뜯어 밥에 비벼 먹으면 한 끼를 뚝딱 해결할 수 있었다. 먹을 거 많이 가리고, 반찬 투정을 많이 했던 나는 가끔 이걸 뿌려서 밥을 먹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 세트가 끝나고 다른 글감을 찾기 위해 새로운 밥상을 차려야 했다. 뭘 해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오래전 만난 이 친구에 대한 추억이 딱 떠올랐다. 맛가루를 주메뉴로 삼아서 밥상을 차리기에는 너무 애매했기 때문에, 단편 시리즈인 <한 그릇의 이야기>로 꾸려보았다.
맛가루를 사기 위해 집 앞 마트에 찾아갔다. 근데, 마트를 몇 바퀴를 둘러보아도 맛가루를 찾기 어려웠다. 마트를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매대 한편에 콕 박혀 있는 후리카케를 찾았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몇몇 회사에서 경쟁하다시피 만든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제품 단 하나만 남아 있었다. 특설 매장까지 마련되었던 히트 상품이 지금은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니. 마트 매대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마트에서 느낀 감상은 고이 접어두고, 이제 밥상을 차릴 시간. 잘 데운 밥 한 공기에다가 맛가루와 참기름을 버무렸다. 글에 실을 사진을 찍은 다음 얼핏 들으면 맛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MSG 특유의 감칠맛이 생각보다 맞지 않았다. 맛있는 것끼리 섞인 비빔밥은 맛있었는데, 그때 먹었던 추억의 맛을 재현하지 못했다. 나의 추억은 맛가루가 주는 불량 식품 감성을 오롯이 느끼는 거 아니었을까?
한때의 국민 스타가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은퇴를 앞두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도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나는 그날 저녁, 20년 전 밥상 스타 맛가루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갈 땐 가더라도, 맛가루 한 봉 정도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