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없는 말투가 마음을 멀어지게 할 때
“그 얘기, 뭐하러 꺼내?”
“그 정도로 힘들다 하면 다 힘들지.”
“너가 좀 더 둔했으면 덜 힘들었을걸?”
나는 단지 기분이 나빴던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감정이 틀렸다고 말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해결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돌아온 건 공감이 아닌 평가였다.
그 말 이후, 나는 그 사람과 더 이상 마음을 나누지 않게 되었다.
‘이야기를 해봐야 내 감정을 가볍게 넘길 사람’이라는 실망감이 먼저 앞섰다.
마음은 조용히 닫혔다. 그리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공감 없는 말투를 쓰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게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공감이 무엇인지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울 일 아니야."
"그 정도는 참고 넘겨야지."
"왜 예민하게 굴어?"
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감정을 ‘느껴도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남이 감정을 꺼낼 때, 그 불편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을 덧씌우거나 판단하려는 말로 빠르게 처리하려 한다. 그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방어적 말투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통제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감정은 통제할 대상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내면의 언어다.
누군가가 감정을 꺼낸다면 그 안엔 보이지 않는 문장이 있다.
“나는 지금 이해받고 싶어요.”
“그 말이 나를 작게 만들었어요.”
“내가 존중받고 있는 건지 헷갈렸어요.”
감정은 이렇듯 내면의 욕구를 설명하는 신호다.
공감은 그 감정을 ‘읽고 머물러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공감받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타인의 감정에는 서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공감받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래도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
“그렇게 약해져서 어쩌려고 그래?”
같은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만나는 순간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비판이나 해결로 덮으려 한다. 공감은 가르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공감이 불편하고,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린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다. 공금은 훈련을 필요로한다.
누군가 감정을 꺼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마법의 3가지 문장만 훈련해도 충분히 공감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때 정말 당황스러웠겠다.”
“그 말 듣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 상황이면 나라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이 문장의 공통점은 판단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당신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저 함께 머무는 태도, 그게 진짜 공감이다.
누군가에게 용기 내서 꺼낸 이야기로 오히려 마음이 닫힐 때, 당신의 감정은 틀린 게 아니라, 무시당한 것이다. 그럴 땐 이렇게 해보자.
→ “나는 지금 실망했고, 외롭다.”라고 속으로 말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다듬어진다.
→ 공감은 모든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잘 고르자.
→ 감정의 목적을 먼저 알려주면, 오해 없이 마음이 닿을 수 있다.
감정은 반응이 아니다.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다.
그 메시지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결국 관계를 지켜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