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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평가부터 하시네요

초면에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의 무례함에 대하여

by 서하

“저랑 비슷한 결이신 거 같네요.”
“내면이 단단하지 않은 것 같아요.”
“상처 잘 받으실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이 일은 거칠고 힘든데, 감정에 흔들리는 분이면 버티기 어려워요.”
“사람들 잘 이끌 수 있겠어요? 중심이 단단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나를 분석했고, 단정했고, 조언을 건넸다.

처음 본 자리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말도 꺼내기 전인데 말이다.




초면에 사람을 ‘프레임 씌우는 사람들’의 무례함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상대에게 ‘조언’이라는 이름을 붙인 판단을 던진다.

그 말에는 겉으로는 “잘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은 나보다 아래야, 내가 당신을 꿰뚫어봤어”라는 은근한 우위가 깔려 있다.


왜 초면부터 판단하려 들까?

이런 말들을 습관처럼 던지는 사람들의 심리엔 다음 두 가지 심리가 숨어 있다.


1. 우위에 서려는 무의식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서열을 정하려는 본능이 있다.
특히 불안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약해 보이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먼저 말로 ‘당신을 정리’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단단하고 위에 있는 사람처럼 포장한다.

“이 일을 잘하려면 단단해야 하거든요.” 라는 말은 실제로는
→ “나는 단단하니까 당신은 배워야 해요.”라는 메시지다.


2. 프레임을 씌워 조정하려는 통제욕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은 상대를 자신이 익숙한 틀 안에 넣고 싶어 한다.
그래야 예측 가능하고, 감정적으로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잖아요?”
“이런 유형은 이런 어려움이 있어요.”

이런 말들은 조언이 아니라 상대를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통제하려는 심리적 행위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 자기 경험의 틀 안에서만 세상을 해석한다.
한두 번의 인상, 몇 마디의 말투, 표정, 직업, 성격 유형…
그 사람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프레임을 보는 것이다.

사람을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자신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자기 삶의 방식 외에 다른 삶을 인정하지 못한다. 즉, 세상을 해석하는 언어의 폭이 좁은 사람이다.


그런 말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

상대가 던지는 그 ‘조언 같은 평가’를 굳이 해명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자격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사람의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나는 내 시야마저 좁아지게 된다.


사람은 ‘보는 눈’보다 ‘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을 평가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멈추고 생각하자.

“나는 지금, 그를 이해하려는 걸까?
아니면 내가 익숙한 기준에 맞추려는 걸까?”

평가 대신 관찰을, 분석 대신 질문을, 해석 대신 여백을.

그게 사람을 대하는 성숙한 거리감이다.

사람은 한 장의 명함, 한 줄의 소개, 한 번의 표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초면에 당신을 단정 지으려는 사람과는 거리 두기를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판단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과 어울려야 하니까.



“MBTI 뭐에요?”
“혹시 A형이세요?”

처음 보는 자리에서, 이 질문은 이제 대화의 첫 줄이자!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상대를 간편하게 ‘정리’하기 위해 MBTI나 혈액형, 성격유형을 묻고 있진 않은가요? 물론 흥미롭고, 대화를 트기엔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단정하는 문화는

오히려 관계의 깊이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ISTJ면 딱딱하겠네.”

“ENFP면 감정 기복 심하죠?”

“B형은 역시 자기중심적이야.”


이런 말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 어떤 틀에 넣을지를 먼저 결정하는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정답은 없습니다. 그 상대방이 살아온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여주세요.
성격은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이고, 관계는 유형을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알아가려는 노력의 과정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성숙한 관계를 이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해주세요.

더 따뜻한 만남이 만들어질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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